
올해 초 한 방송이 공개한 블랙박스 영상에 전 국민이 충격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영상이다. 손자를 태우고 운행 중이던 60대 할머니의 차량이 굉음과 함께 600m를 급발진해 왕복 4차선 도로를 날아 넘어 지하통로로 추락했다. 손자는 사망하고 할머니는 중상을 입었다. 차량이 질주하자 "이게 왜 이래"라는 할머니의 음성이 반복된다. 이내 사고를 직감한 듯 손자의 이름만 연신 울부짖었다. 뒤늦게 손자의 사망을 전해 들은 할머니는 아들 내외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사고 처리는 급발진 의심 사고 처리 관행대로 진행됐다. 할머니는 사고의 가해자로 입건됐다. 졸지에 손자를 사망케 한 피의자가 된 것이다. 여론이 폭발했다. 급발진 의심사고의 책임을 운전자가 독박 쓰는 제도에 누적된 불만이 일시에 터진 것이다. 영상은 급발진을 의심하기에 충분했고, 시청자들은 가장 강력한 애착관계인 할머니와 손자의 비극을 자기 일처럼 공감했다.
경찰이 17일 할머니를 무혐의 처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차량 제동장치에 기계적 결함은 없고, 운전자가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밟아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감정했다. 경찰은 실제 사고 차량의 오작동을 확인할 수 있는 결과가 아니어서 할머니의 과실 증거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 경찰이 국과수 감정을 탄핵하는 거의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이 사건에 집중하는 여론을 의식한 조사 결과로 보인다.
차량 급발진 사고는 세계적 미스터리다. 미국은 10여년 전 도요타 차량 급발진 사고 원인이 차량 전자제어장치(ECU) 오류라는 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12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도요타는 벌금을 내면서도 급발진 책임은 부인했다. 전문가들은 지금도 ECU를 급발진 원인으로 강력하게 의심하지만 제조사들은 한결 같이 부인한다. 첨단과학의 시대에 급발진 사고 규명이 힘드니 각종 음모론이 횡행한다. 미국처럼 급발진 책임규명을 제조사에게 지워야 한다. 강릉 사고를 계기로 관련 입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찬반 논란에 처리 여부가 불투명하다. 자동차 업계의 반발도 심하다. 강릉 할머니 가족은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제조사의 급발진 책임을 밝혀내야 승소한다. 개인의 역량으로는 불가능하다. 법 개정 전에 차량내 '페달 블랙박스' 의무 설치도 고려해볼 만하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