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한구석에 켜켜이 쌓인 책더미를 볼 때면 돌덩이를 얹은 듯 마음이 무거워진다. "대체 언제 다 읽고 치우지?" 책 살 시간은 있어도 읽을 시간은 없는 현대인에게 '장서의 괴로움'은 숙명이라 변명해왔지만, '장서의 기쁨'을 즐기는 저자 앞에서 숙연해졌다.
'굶주린 마흔의 생존 독서' 저자 변한다(필명·실명 변정현)가 2년여 동안 퇴근 후 조금씩 읽어나간 책은 800권에 이른다. 그저 양적으로 많이 보는 게 아닌, 문장에 담긴 숨은 의미를 골똘히 생각하며 정독한다. 그의 독서 에세이에는 책을 향한 깊은 사랑과 생활밀착형 통찰이 묻어났다.
직장·교육·친구, 일상을 무겁게 성찰
'읽는 행위는 개인적 혁명이다'를 증명
목차를 펼치자 눈에 들어온 건 독서 큐레이션이다. 'K를 생각한다' 같은 대중 사회과학서부터, 일찌감치 고전 반열에 든 일본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까지. 오랜 시간 곱씹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을 선별했다는 점에서 안심하고 책장을 넘기게 했다.
역사 속 인물을 토대로 끝없이 책을 읽고 쓰는 행위가 '혁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아름다운 문체로 전했던 사사키 아타루. 맥락은 이해되나 자못 고담준론처럼 다가왔던 그의 주장을 '굶주린 마흔의 생존 독서'는 일상생활에서 증명해낸다. 저자는 그간 읽은 책을 떠올리며 직장, 교육, 친구와의 대화 같은 사소한 일상을 무겁게 성찰한다.
저자의 이야기는 모두 '책 읽기 덕분에'로 귀결된다.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던 허한 마음이 채워지고, 그렇게 조금씩 어제보다 더 나은 생각을 품게 됐다.
긴 글을 꺼리는 세태, 영상이 텍스트를 제압한 시대. 그럼에도 그 속에서 묵묵히 책을 읽어가는 행위는 개인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혁명인지도 모른다. '굶주린 마흔의 생존 독서'를 덮고 먼지 앉은 책더미에서 책 한 권을 끄집어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