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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했을 때, 학교에서 안내문이 왔다. 신상정보와 가족관계 등을 적는 간단한 안내문이었다. 처음 받아보는 학교 문서에 내가 입학한 것처럼 긴장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름, 가족관계, 주소, 병력 등을 묻는 쉬운 질문이었지만 시험지 답안을 적는 것처럼 고심하며 써 내려갔다. 그러다 한 질문 앞에 멈춰서게 되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아이의 장래 직업은?' 초등학교 1학년에 갓 입학한 아이에게 장래 직업이라. 나에게 이 질문은 수능 킬러 문항처럼 난해했다. 질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생각했다.

'우리 사회의 교육 방향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라는 서술형이 아니구나. '어떤 직업을 갖고 싶냐?'라는 질문처럼 수많은 직업군 중에 하나를 택하는 객관식이었구나'. 한국 교육에 발을 내딛은 것을 실감했다. 학교, 학원.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한 경쟁의 무게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초등학교 2학년에 첫 학원을 보낸 지인에게 '어머님 지금 너무 늦었어요'라고 말했다던 학원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그럼 언제가 제때일까? 경쟁 교육 속에서 알맞은 때는 없으리라. 사회가 만들어 놓은 수능 성공, 좋은 대학을 향한 경주에서 불안에 불안을 갱신하며 나아갈 뿐. 


아이 초교 입학때 장래직업 질문에
우리 교육 서술형 아닌 객관식 실감
학교현장 붕괴 학생인권조례탓 아냐


한국 사회의 교육은 대학입시를 중대한 목적으로 설정하고 변모해갔다. 학교의 질서도 구성원들의 관계 설정도. 한국 사회에서 대입의 좌절은 곧 인생 첫 관문의 실패처럼 여겨졌다. 교육은 학생들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상상보다는 어떤 대학을 갈 것인지 우선에 두었다. 학생도, 학부모도, 학교도 그 밖을 내다볼 수 없었다. 현 교육제도에 맞는 사람을 만들어 가기 위해 학생들에게는 '학생답다'는 기준이 강요되었다.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규제의 대상이 되었다. 학생을, 사회를 구성하는 한 시민으로 바로 보고 자율성을 존중하는 과정은 부재했다. 학교는 자율과 공동체가 살아 숨쉬는 곳이 아닌 경쟁의 공간이 되었고, 학생, 교사, 교직원 등 구성원들은 서로를 타자화했다.

'언제까지 서로를 밀어내는 교육, 학생이라는 교육의 소중한 주체의 인권을 존중하지 못하는 교육을 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학생인권조례가 2010년 경기도에서 최초로 만들어졌다. 학생의 존엄과 가치가 학교 현장에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자 세상이 뒤집어질 것처럼 난리가 났지만, 세상은 뒤집어지지도 망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권리를 더 많이 알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늘어났을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의 인권보장이 교육 현장을 엉망으로 만든다는 오해가 있다. 교사들의 노동권이 지켜지지 않는 것의 주범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지목하기 때문이다. 최근 개악을 추진하는 경기도학생인권조례의 경우도 그렇다. 정부와 교육청은 학생들이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아서 교육 현장의 붕괴가 일어난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한 학급당 많은 인원수, 교사의 과도한 노동, 경쟁 입시 교육의 과열화 문제, 학교 구성들의 인권을 존중하지 못하는 문제 등. 교육 당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모두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세상의 기본 가치 배우는 과정 소중
교육당국 왜곡된 시선부터 개선을


"저는 학생인권조례 세대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 경기도에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었고, 그 조례 덕분에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다양성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얼마 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개악 저지 기자회견에서 한 경기도의원이 한 말이다. 누군가에게 학생인권조례는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배우는 소중한 과정이었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10여 년 동안 학교에서 인권을 이야기하고, 학생들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배워왔다. 그로써 내가 주체적인 인간이라는 것, 민주시민으로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생인권조례는 이 사회에서 존중받는 사회구성원으로 살기위해 필요한 진정한 교육의 시작이었다. 정말 바뀌고 개정되어야 할 것은 경쟁 중심의 교육과 학교에서 발생한 모든 책임을 학생인권조례 탓으로 돌리는 교육 당국의 왜곡된 시선이 아닐까.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