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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 75종이 분포한 빈대의 영어 명칭은 bedbug, 침대벌레다. 낮에는 숨어있다 밤이 되면 잠자리에 올라와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다. 흡혈 본능이 얼마나 강렬한지 침대 진입이 막히면 천장에 올라가 낙하해 기어코 피 맛을 본단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이 직접 당한 뒤 임직원들에게 빈대의 끈기와 인내를 강조했다는 일화도 있다. 지어낸 말이 아니라 이 같은 빈대의 생태를 증언한 저작물과 연구서가 많다.

동굴에 거주할 때부터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의 반려(?)였던 빈대가 종말적 재앙은 맞은 적이 있다. 2차세계대전부터 강력한 살충제인 DDT가 전 세계에 살포되면서 빈대가 자취를 감췄다. 빈대에 시달렸던 가난한 대한민국도 6·25전쟁과 월남전에서 확인한 DDT를 대도시 상공에서 살포했던 시절이 있었다. 집집마다 빈대 잡으려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빈대만 잡은 것이 아니라 사람까지 잡았다. 맹독성이 확인되면서 DDT는 퇴출됐다. 경제가 발전하고 주거환경이 청결해지자 빈대는 스스로 사람 곁을 떠났다.

전국이 빈대 소동으로 난리가 났다. 인천 찜질방에서 출현한 빈대는 대구 계명대학교 기숙사에서도 발견됐다. 당국은 외국인들을 따라 유입된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 여행객에게 악명이 자자한 유럽의 빈대 침대나, 올림픽을 앞두고 빈대와 전쟁을 선포한 파리를 떠올리면 당연한 짐작이다.

빈대는 사람을 따라 이동한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225만명이고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 3천만명 시대를 열겠다고 한다. 인천과 대구가 아니라 이미 전국에 퍼졌을 테다. 빈부의 격차가 극단을 치닫는 시대다. 빈자의 침대와 이부자리에 빈대가 정주할 가능성이 높다. 공공방역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같은 흡혈충인 이와 벼룩이 발진티푸스나 페스트를 매개하는 것과 달리, 빈대는 병원체를 매개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숙명적인 숙주인 인간을 해치지 않도록 진화한 셈이니 선을 지키는 빈대의 신사도가 대견하다. 그런데 인간의 혐오는 빈대에 지독하다. '빈대 붙는다'는 관용구대로 어디나 이런 사람들이 있지만, 애교 수준을 넘어 법과 제도에 기생해 사회의 피를 빠는 인간 빈대들은 구제불능이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울 수는 없지만, 불을 내서라도 잡고 싶은 인간 빈대들이 우글거린다. 침대벌레 빈대 보다 사회벌레인 인간 빈대 구충이 더 시급한 일이지 싶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