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도는 개항 당시의 인천을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세부가 충실하고 산천과 길과 도서를 한꺼번에 제시하고 있는 시각 자료이기 때문에 인천 연구에는 참으로 요긴한 자료이다. 그런데 이 그림지도는 옛 지도처럼 지형과 방향별로 다르게 그리고 글씨도 다르게 써 놓았다는 점이다. 북쪽의 응봉산은 정면으로 볼 수 있지만 서쪽의 영종도는 왼쪽으로 90도, 맞은 편 월미산은 180도, 남쪽의 섬과 바다는 오른쪽으로 90도 돌려 그려져 있다. 동서남북 돌려가면서 보아야 하니 원근법에 익숙한 눈에는 산만하기 이를 데가 없다.
'인천제물포도형' 개항 당시의 모습 인상적
산점투시법 그림으로 인터넷 거리뷰와 흡사
이 그림을 원고에 넣거나 화상 강의에 사용할 때는 방향별로 돌려 보여주거나 일일이 설명해야 하니 더 번거롭다. '인천제물포도형'은 전형적인 산점투시법에 의한 그림으로 화가의 눈을 한 점에 고정시키지 않고 다른 각도에서 본 묘사대상을 한 화면에 그리는 방법을 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림지도를 보면서 동양의 투시도법 원리를 이해하게 되고 그 시선과 의도에도 수긍하게 되었다. 이 그림지도를 동서남북 한 방향으로 돌려보면 인터넷 지도의 거리뷰와 흡사한 한 편의 파노라마가 된다. 원근법으로는 눈에 보이는 사물과 풍경, 즉 전면만 그릴 수 있다. 한국화의 산점투시법은 뒤나 옆도 볼 수 있어 현장에서 체험하는 풍경을 보여주는 데는 유리한 것이다,
우리가 근대적 시선이라고 배운 원근법은 한쪽 눈을 특정한 위치에 고정시키고 소실점을 향해 대상을 차례대로 배치하는 일점 투시도법에 의거한 것이다. 기하학적으로 잘 정돈된 듯이 보이는 이 투시법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의 특권적 관점, 고정적인 관점으로 세계를 보는 것이다. 원근법은 맨눈으로 보는 세계와도 다르기 때문에 실은 또하나의 관념이나 이념의 소산인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지도의 세부 묘사도 특이하다. 제물포와 월미도 포구의 어촌 풍경은 가구 수까지 헤아려 볼 수 있을 정도로 특별히 세밀하다. 포구에 정박한 어선들도 한척 한척 그렸고, 월미산 꼭대기에는 당산목인지 나무 한 그루가 우뚝하다. 월미산 기슭에 왕의 피난시 숙소인 행궁 옛터(行宮舊址)가 있다는 표시도 해 두었다. 이처럼 화공의 관심은 산의 모양이 어떤지, 인가는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사람이 사는 집은 몇 채나 되는지 등이다. 서양인이나 서양을 갓 배운 일본인이 그린 제물포 지도에서는 이 같은 시선은 발견할 수 없다. 세계를 자연과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인문적 사유는 서양식 근대를 조급히 따라 배우면서 소홀히 해온 시선이자 사유 방법이 아닐까.
근대적 시선 여긴 원근법 특권적 생각일뿐
있는 그대로 세상 보려면 다양한 관점 필요
육면체를 각 면을 제대로 보려면 여섯 시점이 필요하듯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면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 사냥감을 노리는 포수처럼 외눈으로 세상을 보려는 자도 있지만 말이다. 복수의 관점 혹은 복안(複眼), 니체는 이를 '퍼스펙트주의(perspectivism)'라고 했다. 동산을 보려면 동쪽으로 눈을 돌리고, 남산은 남쪽으로 눈을 돌려야 잘 보인다. 아이들의 눈을 보려면 몸을 낮추어야 하고 장애인이나 소수자들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입장이 되어 내재적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