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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소설가
아홉 살 딸의 친구들은 놀이터에서 놀다 말고 군것질거리를 사러 편의점에 가는 모양이지만 우리 아이는 아직 그런 적이 없다. 편의점은 놀이터에서 아주 가깝지만 폭 좁은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엄마나 아빠 없이 길을 건너는 건 절대 금지라고 누누이 말한 터라 아이는 그래 본 적이 없는 거다. "그럼 친구들이 편의점 갈 때 너는 그냥 기다려?" 내가 물었을 때 아이가 대답했다. "진정한 친구들은 안 가. 내가 못 간다고 하면 나를 위해서 자기도 안 가는 거지. 하지만 나 보고 그냥 기다리라고 하면서 갔다 오는 친구들도 가끔 있어. 그래서 나도 요즘은 편의점에 가보고 싶기도 해. 진짜 재밌을 것 같거든." 아이의 표정은 아쉬워 보였다.

나는 소심한 사람이라 아이들끼리 길 건너는 걸 두려워하고, 소심하지는 않지만 아이 아빠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제쯤 아이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 고민하고는 있었다. "그럼 마트에 가면 안 돼? 마트도 놀이터랑 가깝고 길도 안 건너잖아." 놀이터 옆에는 편의점 말고 작은 마트도 한 곳 있다. "하지만 친구들이 마트는 별로 재미가 없대. 편의점이 재밌대. 그리고 친구들한테 마트 가자고 할 것까진 아닌 것 같아. 아빠가 아홉 살 어린이가 벌써 돈 쓰고 그러는 거 좋은 일은 아니라고 했어." 하긴, 편의점에는 동네 꼬마들이 좋아할 아이템들이 꽤 있다. 캐릭터 인형이 달린 사탕 반지나 젤리, 초콜릿 같은 것들 말이다. 

 

부모없이 횡단보도 건너기 금지 당부
친구들과 편의점 못 가본 아홉살 딸
대신 마트 가기로 큰 결심했다는데


아이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침 메뉴는 아보카도를 얹은 토스트다. 버터 넣고 프라이팬에 지진 토스트에 아보카도 반 개를 잘라 얹고, 달걀 프라이와 오렌지 반 개, 그리고 새송이버섯 한 개를 얇게 썰어 구우면 그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아보카도는 소금과 후추만 살짝 뿌려도 고소하고, 새송이버섯에다 오렌지 썬 걸 한 번에 입에 넣으면 식감이 아주 그만이다. 그런데 아침에 새송이버섯이 똑 떨어진 걸 모르고 있었다. 별수 없이 버섯 대신 소시지 한 개를 구웠다.

아침을 먹고 등교하던 아이와 약속했다. 피아노 끝나고 공원 산책을 가기로 말이다. 알겠어, 준비하고 있을게, 그렇게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오후에 하교한 아이가 다급하게 현관에서 소리쳤다. "엄마, 엄마! 친구들이랑 마트 가기로 했어. 나 지갑 줘!", "친구들이 편의점 안 가고 마트 간대?", "응! 나 지금 너무 떨려. 빨리 지갑 줘."

엄마 필요해 샀다는 새송이버섯 봉지
인터넷쇼핑서 미리 주문한건 비밀로

우습지만 나도 덩달아 떨렸다. 허겁지겁 끈 달린 시나모롤 지갑에다가 돈을 넣어주고 목에 걸어주었다. 지갑을 손에 쥐고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지금 큰 결심한 거야.", "무슨 결심?", "엄마랑 공원 가기로 했었잖아. 나는 엄마랑 공원 가는 시간도 정말 소중한데, 그 소중한 시간 빼서 마트에 가는 거야. 이건 정말 큰 결심이야." 그렇게 큰 결심을 한 아이는 마트에 갔고, 놀이터에서 놀다 느지막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금방 돌아왔다. 또 현관에서 소리를 쳤다. "엄마, 여기 좀 빨리 나와 봐!" 아이는 꿀꽈배기 한 봉지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뒤춤에 뭔가 숨기고 있었다. "맞춰 봐. 내가 손에 뭘 들고 있게?", "뭔데?" 아이가 신난 표정으로 짠, 하고 내놓은 건 맙소사, 원 플러스 원 새송이버섯 봉지였다. 

 

"엄마 이거 필요했지? 내가 엄마 주고 싶어서 사왔어!"

엄마 없이 간 혼자만의 첫 쇼핑에서 새송이버섯을 사온 아홉 살 딸이라… 아이를 키운다는 건 대체 어떤 일일까. 나에게 새송이버섯을 쥐여주고 아이는 꿀꽈배기를 손에 쥐고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놀이터로 다시 뛰어나갔다.

아이가 오기 전 인터넷 마트에 원 플러스 원 새송이버섯을 주문한 건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우리 집 냉장고엔 새송이버섯이 그래서 네 봉지나 있다. 간장과 굴소스를 반반씩 넣고 조려놓으면 일주일 반찬으로 넉넉하겠지. 저녁엔 따뜻한 흰 밥 위에 새송이버섯 한 조각씩 올려 후딱 먹어야겠다. 김도 구울까? 버섯이랑 김이 어울리는 반찬이었나? 나는 공연히 바빠져서 주방을 서성였다.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