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해방 이후 우리가 이룩한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성과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지 절감하게 된다. 문제는 정치적, 경제적 성취의 허약함에 있지 않고 그 이상의 영역에 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인식일 것이다. 현재의 위기는 짧게 보자면 촛불혁명을 통해 분출된 정치적 개혁과 사회적 전환의 요구를 달성하지 못한 채 보수적 자유주의 정권에 개혁의 기회를 모두 맡겨버린 데 있다. 지난 문재인 정권은 시대적 요구였던 정치 개혁을 외면한 채 정치를 그 이전 정권에 대한 외적 청산에 국한시켰다. 이것이 지금의 위기를 초래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런 정권 아래에서 시대적으로 필요한 규범 정초의 과제가 수행되리라 기대한 것 자체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시민들이 너무도 순진무구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양대 정당 공유 가치체계 유효 지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머물러 있어
우리가 지향할 가치·의미 철저 무시
이런 현실에서 얻은 값진 교훈이라면 군사 정권에 의한 외적 독재에 못지않게 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규범과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이념의 독단이 초래하는 위험의 엄중함이다. 한 사회가 이룩한 정치적이며 경제적 성취는 그를 토대 짓는 타당한 규범과 이념 없이는 허상에 그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지금의 위기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맹목적 자유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동선과 공공성에 대한 정립이 절실하다. 이를 위한 사회적 규범을 재정립하고,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동체적 원리를 정초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해방 이후 달성한 민주화와 경제적 성공은 그 성과를 공고하게 지켜낼 그 이후의 원리가 없을 때 속절없이 무너질 수도 있음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을 위한 규범과 원리를 정립하지 못할 때 우리는 맹목적 자유주의자의 방종함에 휩쓸려 매몰될 것이다. 우리 옆에 함께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적 경제 지형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결국 내가 이룩한 경제적 성취조차 파괴될 수밖에 없음을 자각해야 한다. 맹목적인 자본주의적 논리를 넘어서지 못하면 천박한 자본가의 속 빈 풍요만이 남게될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그럴 때 공동의 경제는 무너지고 마침내 그들이 가진 한 줌의 풍요마저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렸어야 했다.
사회적 규범·원리·공동선 위한 논의
다음세대 위해 시민이 만들 수 밖에
맹목적 자본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고, 지금 우리가 이룩한 이 성취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원리와 규범을 찾아야 한다. 이런 과제를 현 정치권이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전혀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의 양대 정당이 공유하는 가치체계는 이미 그 유효성이 다한 자유주의적(liberalism) 자본주의에 머물러 있다. 정치와 정책 실행에 따른 미세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이 공유하는 이익체제에서는 너무도 영악하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가치와 의미체계는 철저히 무시한다. 자유주의에 대한 논쟁적 이해와는 별개로 공동선을 보지 못하는 자본과 타자를 배제하는 권력은 궁극적으로 그 사회를 파멸로 치닫게 만든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규범과 사회적 원리, 공동선을 위한 논의는 민주와 자유의 가치를 공유하는 시민들이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공동체적 민주주의와, 존재 의미 및 삶의 가치를 드높이는 지속 가능한 정치·경제 체제를 위한 문화적 토대 건설이 절박하다. 이를 위해 어렵지만 지금의 삶을 성찰하면서 다음 세대가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