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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철 인천대 명예교수
최근 반도체 후공정 시장을 잡기 위한 국제경쟁이 치열하다. 우리나라도 이에 발맞춰 12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 경쟁력 확보'를 중점 추진하고 있으며, 지난 3월에 열린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는 반도체를 비롯한 6대 국가첨단산업 육성전략을 발표했다. 단연 돋보였던 것은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조성과 첨단 패키징 거점 구축을 위한 대규모 민간투자를 뒷받침한다는 내용이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반도체 특화단지를 유치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고 그 결과 지난 7월 용인과 평택, 구미지역이 국가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최종 선정됐다. 필자가 몸 담고 있는 인천 또한 이를 위해 사력을 다했다. 인천이 내세웠던 강점은 엠코테크놀로지코리아와 스태츠칩팩코리아를 비롯한 반도체 후공정 분야의 기업 입주와 송도, 남동산단을 반도체 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하고 국내 반도체 패키징의 메카 조성을 목표로 다양한 지원 및 투자를 진행하겠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인천은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에 실패했다. 선정된 지역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전(前)공정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반도체 산업이라 하면 흔히 전공정만을 떠올리는데 이는 후(後)공정의 역할과 중요도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전공정이 회로설계부터 증착의 단계라면 후공정은 전 단계에서 절단된 칩을 고정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각각의 조직을 하나로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전공정의 미세화를 보완하는 후공정의 역할이 날로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범국가적인 대책이 미흡하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반도체 후공정, 미세화 보완 등 중요도 높아
3월 첨단산업 육성전략 발표 '前공정' 위주

세계 패키징 시장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1위 기업인 대만의 TSMC에 이은 후발주자로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활약은 후공정의 꽃으로 불리는 'PCB시장'이다. 자동차와 AI 산업의 확장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인천의 PCB를 비롯한 반도체 패키징 기업도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원자재 수급난 등 복합적인 위기에도 불구하고 수출액에서 세계 TOP3를 기록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였다. 이와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PCB를 비롯한 반도체 후공정은 전공정에 비해 푸대접을 받고 있다. 이는 반도체 특화단지 지정뿐 아니라 첨단산업단지 입주에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난 2월 반도체 소재 제조업체에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한 발언을 빌리자면, "첨단산업단지는 경제 버팀목이자 국가 안보 자산으로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조성된 산업단지다. 그러나 정작 첨단산업단지에 '첨단 업종'으로 지정된 반도체 후공정 산업은 입주 의향서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후공정 산업의 투자와 지원을 강조하는 인천시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PBC·패키징 기업 선전에도 여전히 푸대접
기존 모습 벗어내고 정부·지자체 관심 필요

점차 심화 되고 있는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첨단산업단지 규제 완화 및 적절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첨단산업단지 규제 완화는 국내 기업들이 더욱 활발한 연구개발 활동을 펼칠 수 있게 하고, 나아가 더 많은 일자리 창출, 국가 미래 경쟁력 확보 등 선순환의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가능하게 한다. 일례로 든 인천시의 첨단산업단지 입주제한은 단순히 지역적인 문제를 넘어, 국가의 산업 경쟁력과 미래에 영향을 주는 중대한 이슈로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 이제는 정부와 지자체가 하나된 힘으로, PCB 등 반도체 후공정 산업의 미래 성장을 위한 기반을 단단히 다져 나가야 할 시점이다.

기술과 산업의 발전은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과 지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에 필자는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 경쟁력을 만드는 첫걸음은 '반도체 후공정 산업'을 발목 잡는 규제 철폐에 있다고 강조하고 싶다. 끊임없는 변화의 격랑 속에서 반도체 산업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자 한다면 기존의 구태를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그 변화의 시작을 선도할 국가가 세계 반도체 패키징 시장의 선두로 우뚝 설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시켜야 될 것이다.

/정상철 인천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