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총선을 한 달도 남겨놓지 않은 2000년 3월23일. 도시의 주요 교차로마다 정체불명의 현수막이 일제히 내걸렸다. 하얀색 천에 엉성한 필체의 검정색 여섯 글자. 낯설고 기이했다. 처음엔 우리 동네에만 붙은 줄 알았지. 웬 얼빠진 녀석이 옛사랑을 소환하며 부린 객기거니 했다. 한 청년의 도발적인 애정 고백쯤으로도 여겼다. 어떤 이는 후보를 극적으로 알리려는 선거 캠페인인 줄 알았단다. 때가 때인지라 그럴 만도 했다.
대한민국 광고사에 한 획을 그은 티저광고 '선영아 사랑해'는 그렇게 화장발 가신 민낯으로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났다. 종로2가 피자가게 골목의 실제 사랑 고백 낙서를 빌려 온 이 현수막 광고에 세상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호기심과 궁금증을 참아내지 못했다.
당시 총선 출마자 가운데 '선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후보는 단 두 명, 그것도 남성이었는데 서울 서초 갑의 배선영 후보가 문제의 현수막이 경쟁 후보의 음해공작이 아닌가 해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나중에 결혼과 육아정보를 다루는 새로운 여성정보사이트가 광고의 주체로 공개되자 한 달 만에 15만명의 회원 신청자가 몰려들었다. 급기야 광고기획자가 'KBS 9시 뉴스'를 통해 전 국민에게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현수막 하나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현수막, 강렬한 메시지로 근·현대사 미디어
지금은 천하의 천덕꾸러기 손가락질 받아
현수막은 사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형태와 방법의 선전·광고·홍보 수단이다. 대체로 가로 500㎝, 세로 90㎝인 직사각형 천 위에 온갖 구호와 문구가 담긴다. 그게 전부다. 그렇지만 직접적(直接的)이고, 직각적(直覺的)이며, 직관적(直觀的)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매우 강력한 미디어다. 굴곡 많았던 우리 근·현대사의 여러 장면에서도 그러했다. 역사의 변곡점마다 현수막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디어로 기능했다.
3·1운동이 들불의 기세로 일어날 때 학생들은 '어서 잠을 깨어 속히 나서라'고 적은 현수막을 높이 들었다. 그해 4월 미국 필라델피아에 모인 이승만, 서재필 박사를 포함한 동포 150여 명이 'Korean Independence League(조선독립동맹)'가 제1차 한인회의의 주최자임을 밝히는 현수막을 펼친 채 거리를 행진하면서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렸다. 해방공간에서는 진영별로 저마다 신탁통치 찬반의 현수막들을 내걸었다. 4·19혁명 때 "민주주의를 사수하자"고 외쳤던 학생들은 이듬해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판문점으로!" 구호가 담긴 현수막을 들고 남북학생회담을 추진했다. 80년대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는 현장마다 "파쇼타도 민주쟁취"를 피로 쓴 현수막이 최루탄 연무 속에 의연하게 나부꼈다.
이랬던 현수막이 지금 천하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뭇사람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발단은 지난해 6월 국회의 옥외광고물법 개정이다. 정당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을 표시하는 현수막을 사실상 무제한으로 풀어줬다. 12월 시행에 들어가자마자 원색적인 비방과 막말이 담긴 현수막들이 거리를 뒤덮었다. 상스럽고 낯 뜨거운 표현들이 난무했다. 일부 현수막의 내용은 누가 봐도 가짜뉴스임에 틀림없었다. 지켜보는 시민들이 오히려 부끄러워하고 속상해했다. 지자체로 철거를 요구하는 민원이 빗발쳤다.
여야, 상호비방 자제 '신사협정' 맺었지만
민주, 尹 시정연설 피켓 '장외 핑계' 판 깨
누가 부끄러움을 가르쳐 준 것일까. 모처럼 여야가 상호비방을 자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먼저 상대를 자극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현수막을 자진 철거하겠다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회의장 안에서 피켓을 치우고 야유도 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지난주 신사협정까지 맺었다. 그런데 멍석을 채 깔기도 전에 파장(罷場)의 징소리부터 요란하지 않던가. 첫 번째 고비였던 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부터 판은 깨졌다. 장외라는 핑계다.
현수막 하나로 나라를 들었다 놨다 했던 그 여성정보사이트도 끝내 문 닫았다는 사실을 이즈음 알았다. 정당과 정치인이라고 피할 수 있겠는가.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시대의 요구를 담아내지 못하면 도태가 필연이다. 겨우 현수막 한 장, 피켓 하나라고 가벼이 여기지 마시라. '선영아 어떡해' 그때 가서 아무리 후회한들.
/이충환 서울대 객원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