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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1주기 다음 날인 30일 오전 인천시 중구 학생교육문화회관 위령비 앞에서 인현동 화재 참사 24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1999년 10월 그날 인현동 한 상가건물에서 불이 났다. 지하1층 노래방에서 발생한 화재로 2층 호프집에서 중·고등학생들이 떼죽음 당했다. 사고 사망자 57명 중 학생만 53명, 인천 시내 고등학교 대부분이 초상집이 됐다.

학생들은 가을 축제를 만끽했다. 여흥을 이어가려 모인 곳이 호프집이다. 그땐 학생들이 놀 곳이 없었다. 불법으로 학생을 받아 준 호프집만이 공공연한 익명의 해방구였다. 불법을 은폐하려는 악덕업주는 치밀했다. 비상구를 봉쇄하고 창문은 합판으로 막았다. 대피하려는 학생들 앞을 막아선 종업원은 '계산 먼저'를 요구했다. 희생자 대부분의 사인은 질식이었다.

어린 희생자들은 죽음도 모자라 비난 여론에 갇혔다. 호프집에 드나든 비행 청소년의 자업자득이라는 냉혹한 비난이었다. 희생자들의 친구들은 항변했다. "친구들이 너무 불쌍해요…. 우리에겐 갈 곳이 별로 없잖아요. 호프집에 간 아이들 중엔 모범생이 더 많아요. 호프집에 갔다고 결코 탈선에 빠진 게 아닙니다."(11월 2일자 16면 보도)

유족들이 24년째 아이들의 죽음을 추모하며 '사회적 망각'을 저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을 호프집에 가둔 문화와 제도, 비리는 온 데 간 데 없이 죽은 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사회를 향한 저항이다. 불법을 방치한 비리는 처벌받지 않았다. 유족회는 지금도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사고 방지대책을 촉구한다.

1999년 6월 30일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로 유치원생 19명이 숨졌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전 여자 하키 국가대표 김순덕도 어린 아들을 잃었다. 정부는 게거품을 물며 재발 방지를 강조했다. 네 달 뒤 인현동 화재를 목격한 그녀는 "이 나라는 달라질 게 없다"며 훈장을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 갔다.

인현동 화재 참사 유족회는 국가가 제도적 타살을 인정하고 안전대책을 세워야 자식들의 명예가 회복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1999년 봄, 가을 참사 이후에도 크고 작은 참사는 끊이지 않았고, 지난해 이태원에서 비극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참사의 희생은 정치 진영에 분할돼 귀속되고, 진영에서 누락된 비극은 잊힌다. 이토록 절망적인 비극은 또 없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