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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겨울을 봄으로 착각한 생명들이 점점 늘어난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다. 개나리, 진달래, 철쭉이 겨울 전령이 된 건 이제 뉴스도 아니다. 이젠 수확을 마친 논에서 벼가 자라 이삭을 맺는 지경이다. 일본에선 지난 1일 여름철 토네이도까지 발생했단다. 잎을 떨군 나무들로 을씨년한 거리와 반소매 차림 행인들의 부조화도 앞으론 자연스러운 초겨울 풍경이 될 모양이다.

UN이 아무리 탄소 제로를 외쳐봐야 자국 이기주의에 빠진 국가들은 시늉만 한다. 대기 중 탄소를 지금 수준으로 유지해도 지구 온난화 추세는 막기 힘들다. 인류는 위기를 기회로 의역하는 동물이다. 온난화 특수를 기대하는 나라와 기업들이 즐비하다. 러시아는 동토가 옥토가 된다고 기대하고, 기업들은 그린란드와 북극해에서 사업 기회를 찾고 있다. 남태평양 섬 나라와 북극곰의 비극은 그들에게 사소하다.

모레면 입동(立冬)인데 입춘 지나 입하 즈음 같다. 지난 2일 경주 29.4도, 강릉 29.1도를 기록했다. 진해시 진영읍은 30.7도까지 치솟았다. 11월 역대 최고 기온이란다. 이러니 겨울 철새 가마우지가 텃새가 돼 물고기 씨를 말리고 똥으로 숲을 말려 죽인다. 왜가리를 비롯해 한반도에서 기후 영주권을 취득한 철새들도 늘어만 간다.

어제 오늘 비가 그치면 기온이 뚝 떨어진다지만 지난달 25일 기상청이 내놓은 3개월 전망에 따르면 이달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은 74%, 12월은 75%, 내년 1월은 67%라고 한다. 포근한 겨울은 서민들에게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다. 고물가 시대에 난방비 등 이런저런 월동 비용만 확 줄어도 등골이 훨씬 편할 테다. 자영업자나 시설 농업인의 원가 절감 효과도 톡톡할 테니 물가 안정에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지구 온난화로 사계가 헝클어질양이면, 서민에겐 겨울이 사라지는 게 나을 듯싶다.

겨울이 없는 봄, 여름, 가을이 초래할 위기와 기회를 예단하긴 힘들다. 반만년 겨울을 겪은 민족의 정서적 결핍도 보통 문제가 아닐 것이다. 영화 '아저씨'에서 아저씨가 말했다. "니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보고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나는 오늘만 산다." 서민들은 겨울 한파가 두렵다. 지구의 미래나 겨울 낭만 걱정 보다, 그저 올 겨울만이라도 따뜻하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만큼 팍팍한 살림살이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