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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소설가
가을 나들이를 다녀왔다. 충북 음성에 있는 매괴고등학교에서 특강 요청이 들어왔을 때부터 내 머릿속에는 이 일대의 성당과 저수지를 돌아다닐 여행 일정이 펼쳐졌다. 강연을 마친 후 학교 옆에 있는 매괴성당으로 향했다. '매괴'는 장미꽃다발을 한자식으로 풀이한 것으로, 성모에게 바치는 묵주기도를 뜻한다. 내가 로사리오(묵주기도)를 처음 한 것이 언제였을까? 아마도 첫 영성체를 받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일 것이다. 당시 우리 본당은 건물도 없어서 오랫동안 컨테이너 박스로 된 임시 건물에서 미사를 드렸다. 나는 '양력'과 다르게 흘러가는 두 시간대를 좋아했다. 하나는 농부인 큰아버지에게 유의미한 24절기가 인쇄되어 있는 달력이다. 농협에서 주는 달력에는 월력과 더불어 중요 절기가 따로 표기되어 있다. 또 하나는 성당에서 쓰는 그레고리력이다. 사순절, 부활절, 성모성월, 대림절과 대축일들로 흘러가는 그레고리력에 따라 신부님이 제대 위에서 입는 의복이 달라진다. 강력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 학교에 가고 의무를 배우고 성적이 매겨지는 시간과는 또 다른 시간들을 나는 사랑했다. 그것은 물처럼 잡을 수 없는 시간 위에 띄우는 또 다른 부표로서, 일상이 다른 빛깔로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난 내킬때만 성당 찾는 불량 신자
지구 한쪽선 이해할 수 없는 전쟁

감곡 매괴성당은 지은 지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성당으로, 가을 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벽돌건물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산책길에는 사제서품을 받은 이듬해 한국에 와서 이 성당을 지은 '임 가밀로'라는 초대신부님의 가묘가 나온다. 안내문에는 문맹퇴치를 위해 학당을 세운 신부님의 공을 치하하여 고종황제가 태극기를 하사한 일,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자 태극기를 제대 속에 숨겨 놓고 지내다가 광복 후 음성에서 가장 먼저 태극기를 내걸었던 일화도 소개되어 있다.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긴 수염을 기른 푸른 눈의 사제이자 한 인간의 삶을 상상하니 아득해진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자라면서 나는 많은 책 속으로 여정을 떠났고 종교의 자리에 문학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 둘은 같지 않으나 인간 삶에 깃든 비애를 헤아리고 만져준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스무 살의 나는 신을 부정하는 철학책을 읽다가 신부님에게 '계속 읽어도 되는지' 자문을 구한 적이 있다. 신부님이 읽지 말라고 하셨으면 아마도 영원히 성당을 등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예상치 못한 답이 나왔다. "얼마든지 읽어도 된다. 율리아나야." 내 본명을 부르면서. "그 책들 또한 신에게서 나온 것들이니까"라고 덧붙이셨다. 신부님은 성당과 제대 위에서 뿐만 아니라 책들의 복도에서도 신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는 분이기에 그처럼 자신감 넘치는 대답을 들려주셨던 것 같다.


중요한건 내가 무엇을 할수 있는가
수많은 죽음위해 두손 모으는것 뿐
기도 목적어보다 주어인 인간 중요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는 내킬 때만 성당을 찾는 불량한 신자이되 무신론자는 결코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남았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시기, 이해할 수 없는 전쟁이 지구 한쪽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기에는 기도를 하기 위해 두 손을 모은다. 인간의 모든 앎이 무력해질 때, 문명의 최종 버전이자 '현재 살아있는 인간'인 우리가 하나의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전쟁이 이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때, 수많은 인간의 죽음이 숫자로 된 뉴스로 전락할 때,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오래된 형식을 빌려 두 손을 모으는 것뿐이다. 21세기에 외교가 아닌 무력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남아있는가? 남아있다. 그 피범벅의 결과를 아무도 제어하지 못하는가? 하지 못한다. 나는 그저 별 것 아닌 한 점의 한 점의 인간으로서 기부라는 약간의 소비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가? 없다. 이것이 얼마나 절망스러운 현실인가.

오래전에 나는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기도가 먼저 발명됐다고. 신은 기도의 목적어로 태어났다고. 우리 신부님이라면 우스갯소리처럼 들어주셨을까.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목적어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주어인 인간,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지이다. 적어도 똑똑히 기억해두기는 해야 한다. 2023년에도 전쟁은 태연하게 멈추지 않았다고.

/김성중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