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원수를 사랑하라" 한 줄로 요약된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산상에서 수많은 복음과 말씀을 남겼지만 그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은 이 한마디일 것이다. 어쩌면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지상명령이어서 그럴까. 신의 이름으로 여전히 전쟁과 살육이 벌어지는 아이러니 말이다. 물론 말 한마디 대신 연꽃 하나 드는 행위로 정신사를 쓴 경우도 있다. '염화시중의 미소'가 그렇다. 깨달음에 이르는 오묘한 진리를 구구절절 말로 설명할 수 있겠나. 그래서 마음을 통해 마음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예수 가르침 "원수를 사랑하라"
한마디로 삶·정신 전체를 관통
사상가들이 특히 명언 하나를 남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근대 서양철학의 문을 연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의 명제이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말로 포스트 모더니즘 선구자가 됐다. 스스로 초인을 추구하거나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거다. '아모르 파티(Amor Fati)'가 행복의 열쇠이다.
독일 출신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한 줄 공식을 남겼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도출된 질량 에너지 동등성으로 'E=MC2'이다. 이를 말로 표현하면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가 시간의 상대성을 설명하면서 "어여쁜 여자의 환심을 살 때는 1시간이 1초처럼, 뜨거운 난로 위에 앉아있을 때는 1초가 1시간처럼 흐른다"고 한 것은 절묘한 비유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가르침을 남긴 이들만 한 줄로 남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자신감을 남겼다. 알프스 고봉준령을 넘었던 그도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에 굴복하고 워털루에서도 패퇴했지만. 그래도 자유와 평등이라는 프랑스대혁명의 가치를 세계에 홀씨처럼 흩뿌렸다.
동양은 좀 더 축약적이다. 한자의 특성 때문이겠다. 수많은 제자를 통해 다양한 가르침을 남긴 공자의 경우 오히려 그를 대표하는 한마디를 선택하기 힘들다. 선호에 따라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을 가훈처럼 걸어 놓는다. 그럼에도 공자를 한 글자로 표현한다면 어질 인(仁)이 아닐까.
우리나라도 한 줄의 위인들이 있다. 이순신 장군은 '상유십이(尙有十二)'로 유명하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선조에게 올림 장계에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구국의 자신감을 표한 것이다. 근래에는 정치적인 곤경 또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헤쳐나가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곧잘 인용된다.
"사람에 충성 않는다"는 尹대통령
국가·국민에 헌신하는 이 중용하길
굴곡진 현대사를 앞장서서 헤쳐온 정치인들도 대표하는 한 줄이 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한 줄은 김영삼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사를 압축한다. 하나회 척결 이후 "깜짝 놀랐제", "씰데 없는 소리"로도 그를 떠올릴 수 있지만 그래도 '대도무문(大道無門)'이 대표적이다. 3당 합당도 그 연장선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생사를 넘나드는 생애와 남북화해를 향한 집념은 '인동초(忍冬草)'로 대변된다. 검찰을 향해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고 말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바보 노무현'으로 남았다.
현존 인물이 한 줄로 대표되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방송프로그램에서 "넌 해고야!"로 유명해졌다. 그 덕분에 의회나 주지사 경력이 없이 대통령에 올랐다. 내년 선거 결과에 따라 그에게 거꾸로 "넌 해고야!" 딱지가 붙을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대표된다. 그가 '사랑하는 검찰'이 아니라 자신에 충성하지 않고 국가와 국민에 헌신하는 이들을 중용하면 긍정적인 한 줄 어록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겠다. 반대의 경우라면 모두에게 불행이겠고.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