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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서울 부암동에 가면 빙허 현진건의 고택이었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하나 있다. 그 앞에는 안평대군의 무계정사가 있었다는 무계원도 자리잡고 있어 한 번 둘러보기 좋은 곳이라 할 만하다.

현진건 소설이라 하면 보통은 그의 너무나 잘 알려진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을 떠올리게 되고, 자전적 소설로 알려진 '빈처' 같은 단편소설의 교과서적 명작을 상기하게 된다. 이들은 모두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현진건의 역사소설 '무영탑'이니 미완에 그친 '흑치상지'는 그의 문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살펴보면 그는 일제강점기의 최남선 사학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가 주재하던 '돔명'이나 '시대일보'에서 일했고, '동아일보'로 옮긴 후에도 최남선이 이 신문의 중요한 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또 본래 최남선과 현진건 집안은 사돈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최남선이 독자적인 조선사학과 불함문화론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 중반 이후 일본 조선총독부 주도의 조선역사 기술에 연계되면서 대일협력의 길을 걸었던 것과 달리 현진건은 일장기 말소사건이 웅변해 주듯이 1930년대 후반 이후의 삶을 깨끗하게 지켜낸 사람이었다. 


현진건 소설 '흑치상지'에 역사 시선
신채호 '평양에 한사군' 논리 부정
일본 고고학자의 역사 조작 조롱도


이러한 현진건의 미완에 그친 장편소설 '흑치상지'는 그 작의부터 흥미롭게 느껴진다. 흑치상지라면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무너진 후 백제부흥전쟁의 중요한 축을 이루었던 인물, 그의 성씨부터 내력과 투쟁과정, 이후의 삶은 지극히 흥미롭다. 특히 그의 묘지석이 한반도 어디가 아니고 현재의 중국 낙양의 북망산에서 출토된 것은 그의 삶이 예사롭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켜 준다.

이 인물의 삶을 그리고자 하면서 현진건은 그 '예고'에서 맹자의 말을 빌려 불의하면서, 즉 '옳지 못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함은 뜬구름과 같다'고 하며, 그에 다다르는 과정도 힘겹기 짝이 없었지만 끝내는 손에 쥔 권력조차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흑치상지를 역사적 교훈으로 삼을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현진건은 당나라에 투항하여 새로운 인생의 길을 걸었던 흑치상지를 결코 좋게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이 소설 공부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역사 문제에 시선이 미치게 된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지금의 북한 평양 지역에 한사군 중 하나인 낙랑군이 있었다는 논리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일본의 고고학자가 가는 곳마다 고대 유물을 발견했다는, 기막힌 우연을 조롱하듯 거론하며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과 북한 평양 지역에 실재했던 최씨 낙랑국은 전혀 다른 별개의 역사라 했다.

우리는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이야기를 아주 잘 알고 있는데, 이는 바로 최리라는 이가 마지막 왕으로 있던 최씨 낙랑국에 얽힌 이야기로 대무신왕 때 고구려는 이 낙랑국을 정복했다고 한다. 이것은 지금 교과서가 아닌 많은 역사 연구가들이 주장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사군의 하나라는 낙랑군은 어디에 있었는가? 이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설들이 있지만 최근에 필자가 접한 역사가들 이야기에 따르면 이 낙랑군은 적어도 현재의 요하 서쪽에 있었다고 한다.

또한 단재는 세키노 타다시가 가는 곳마다 신의 손처럼 평양 등 인근에서 낙랑 유물을 발견한 것을 빗대어 그 역사 조작을 조롱하기도 했다. 지금 이 세키노 타다시가 베이징의 유리창에서 조선총독부를 위하여 한대 유물을 다량으로 사들였음을 써 놓은 그 자신의 일기가 발견된 지도 벌써 수 년이 지났다.

일방적 권위론 진실성 보증 못받아
복잡한 국제관계… 역사 돌아볼때


필자는 언젠가 지금이 역사혁명의 시대이고 신채호가 시작한 역사혁명이 바야흐로 인터넷 유튜브 시대를 만나서 활짝 개화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은 제도권 학계의 권위를 일방적으로 내세우는 것으로는 역사적 진실성을 보증받을 수 없게 된 시대다. 모든 것은 다시 새로운 논의의 토대 위에 올려져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특히 우리의 옛 역사를 다시 돌아볼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 아는 말 가운데,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한다. 그만큼 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관계가 만만치 않다. 일본도, 중국도 너무 많이 자국 중심만의 역사에 매달리고 있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