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빌려주면 수고비 드릴게."
30대 A씨 등은 지난 2020년 9월부터 최근까지 경기도, 대전, 대구 등지의 노숙인, 신용불량자를 이런 방식으로 꼬드겼다. A씨 일당이 노숙인 등 22명 명의로 유령법인을 만든 뒤 법인 통장 계좌를 전화금융사기와 불법 도박 사이트 등 범죄조직에 제공하고 챙긴 사용료는 무려 68억여원, 피해자는 101명에 달한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범죄단체조직,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30대 총책 A씨 등 32명을 검거했고, 이들 중 비슷한 범죄로 이미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A씨 등 9명을 포함해, 총 11명을 구속했다고 13일 밝혔다.
경기남부청, 수감자 포함 11명 구속
유령법인 계좌 900개 추가 확인도
A씨 일당의 범죄 수법도 치밀했다. A씨를 중심으로 실장-팀장-대리로 직급을 정하고, '통장개설팀'과 'AS팀'(계좌 등 관리)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4~5명씩 팀원을 꾸려 점조직처럼 활동했다.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전원 가명을 썼고, 심지어 조직원들끼리도 사무실 위치를 공유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통장개설팀은 노숙인 등에게 접근해 100만~200만원을 주고 인감증명서 등 관련 서류를 넘겨받아 법인을 설립하고 통장을 개설하는 역할을, AS팀은 법인 서류를 관리하고, 만들어진 계좌의 금전 흐름을 관리하는 역할을 각각 했다. 이렇게 손에 쥔 통장은 월 80만~300만원의 사용료를 받고 범죄조직에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지난 3월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해 A씨 일당의 꼬리를 잡았다. 금융기관에 제출된 법인 등기 대상자들의 수사기록·금융거래 등을 토대로 이들을 차례로 검거한 것이다.
경찰은 A씨 일당이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해 체포된 32명 전원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했다. 또한 이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범죄에 이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령법인 계좌 900개를 추가로 확인, 수사 범위를 넓히고 있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