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 강점기 억압·정치적 경계 넘어
한국문학 아름답게 개척한 '거장'
손호연은 해방 전과 1980년대 이렇게 두 번 동경 유학길에 올랐다. 해방 전에 그는 단가를 배우다가 그쪽 예술의 거장인 단가의 시성(詩聖) 사사키 노부츠나(佐佐木信綱)를 사사하게 된다. 귀국 후에도 열심히 단가를 쓰던 그는 1980년 다시 도일하여 '만엽집(萬葉集)' 연구의 대가인 나카니시 스스무(中西 進) 교수를 만나게 된다. 그분에게서 "더 깊은 단가를 지으려면 부여의 백마강을 보고 오시라. 단가는 오래 전 거기에서 온 것이니"라는 말을 듣는 순간, 손호연은 단가가 이곳 한반도에서 건너간 양식이라는 선언을 접하게 된다. 그 떨림과 울림의 잔영은 크고 깊었다. 한꺼번에 미학적 소명감과 함께 사사키 선생과 했던 약속이 결합하면서 손호연은 일본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단가 시인으로 우뚝 서게 된다.
이렇게 일제강점기에 모어를 못 쓰게 한 억압을 넘어, 어쩌면 제국-식민지를 가로지르던 정치적 경계도 넘어, 손호연은 한국 유일의 단가 시인으로 탄생하였다. 그것이 천 년 전 사라진 백제가요를 원형으로 하고 있고, 자신은 그것을 계승하고 확산한다는 믿음으로 그는 평생 단가를 썼다. 타계 후에는 장녀 이승신 시인이 어머니의 시집을 펴냄으로써 국내,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 손호연의 단가 미학은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 노고가 결국 이렇게 탄생 100주년이라는 거대한 기억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이제 한국 시인이면서 동시에 단가 시인인 손호연은 한국문학의 변경을 아름답게 개척한 미학적 거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긴장관계 동아시아' 단순 공존보다
서로 상처 치유·화합 큰 의미 담겨
통합·사랑·포용하는 '평화의 마음'
'국경을, 언어의 벽을 뛰어넘고/끈질기게 피는/나라의 꽃 무궁화', '국경과 언어의 장벽까지 뛰어넘어/나는 피우려네/무궁화 꽃을'. 손호연 단가 미학의 심층적 주제가 되어준 것이 바로 이러한 '경계 너머'에 있다. 그렇게 무궁화 꽃은 한반도를 넘어 그가 살던 일본에까지 아름답게 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웃해 있고 마음에도 가까운 나라 되라고 무궁화를 사랑하고 벚꽃을 사랑하네'. 양국이 다투지 말고 가까웠으면 하는 마음을 시인은 이렇게 드러냈다. 불화를 멈추고 사랑하라는 전언이 그 안에 담겼다. 서로 이웃해 있고 마음도 서로 가까운 나라끼리 '무궁화'와 '벚꽃'을 호혜적으로 사랑하자고 시인은 권면하는 듯하다.
'절실한 소원이 나에게 하나 있지 다툼 없는 나라와 나라가 되어라'. 시인은 절실한 소원 하나를 이렇게 말한다. 다툼 없는 나라와 나라가 되라는 것으로 말이다. '동아시아 끝자락에 살아온 나, 오로지 평화만을 기원했네'. 평화를 잃고 살아온 동아시아에서 평화만을 기원하고 살아온 '시인 손호연'의 마음이 따듯하게 번져온다. 그렇게 손호연 단가에는 날카로운 긴장 관계를 가지고 있는 동아시아의 단순한 공존보다는 서로 상처를 치유하고 모두가 궁극적으로 화합해가는 어떤 길목을 예비하는 데 큰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만큼 그 안에는 분열보다는 통합, 미움보다는 사랑, 배제보다는 포용, 간극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이어주는 정서적 브릿지 역할이 강렬하게 흐르고 있다. 국경을 넘어 융융히 흐르는 평화의 마음이 그렇게 한국문학의 장을 확장해가고 있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