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곳에 돈 쓰지 않고
의약분업 추진 등 애먼곳에 투입
정책자금 흐름 바꾸고
과도한 사법판결 중압감 벗게해야
정부, 의대 증원 숫자 늘리기 급급
일반적으로 환자의 증감을 판단할 때는 외래환자의 변화로 판단한다. 입원환자보다 외래환자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의과 전체의 외래환자(내원일수)는 2003년 5억900만명에서 2022년 7억5천만명으로 47.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의사는 5만8천196명에서 10만9천912명으로 88.9%가 증가했다. 환자 수 증가 폭보다 의사 수 증가 폭이 2배 정도 더 높았다는 의미다. 환자 수보다 의사 수 증가 속도가 훨씬 빠르니 당연히 그 반대로 의사당 환자 수는 갈수록 줄고 있다. 이렇게 거의 모든 의사가 해가 갈수록 환자 수 감소를 몸소 느끼고 있음에도 정부나 국민들은 의사가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요즘 '응급실 뺑뺑이'를 비롯해 의료계에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는 단순히 의사 수 부족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세계적으로 의료전달체계를 강력하게 운용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다 있는 것인데, 그걸 무시하고 병·의원 문턱을 다 없앰으로써 의사의 결정이 아닌 환자 마음대로 병원을 선택해서 갈 수 있도록 한 대한민국 보건당국의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에 더해 실손보험 도입으로 환자의 비용부담까지 줄자 환자들은 같은 값이면 대형병원으로 몰리고, 그로 인해 중환자를 봐야 할 대형병원은 밀려드는 환자 때문에 일시적으로 중환자를 수용하지 못할 상황에 빠진다. 그럴 때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면 '진료거부'나 '환자 뺑뺑이'라고 매도하며 모든 것을 의사 탓으로 돌리고 의사와 의료기관을 비난한다.
2022년 기준 국내 병상당 입원 일수는 상급병원 337.5일, 종합병원 238.5일, 동네병원 180.7일이다. 쉽게 말해, 환자들이 의료전달체계에서 정상적으로 아래부터 채우면서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반대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다. 동네병원의 경우 요양병원까지 합해 총 47만 병상 정도가 운영 중인데 그 절반인 23만 병상이 1년 내내 빈 병상으로 남아있다.
중환자 진료에 매진해야 할 상급종합병원조차 만성적인 저수가로 인해 경증과 중증 환자를 가리지 않고 진료를 많이 보고 입원을 시켜야 겨우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경증 환자는 의료전달체계의 하부 의료기관에서 전담하고, 상부 의료기관은 중증 환자를 전담하면서도 의료기관들이 모두 충분히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의료정책을 설계해야 했으나 현재는 그렇게 되어 있지가 않다. 그래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정책자금의 물꼬를 결정하는 건 바로 정부의 의료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반드시 필요한 필수의료에 돈의 물꼬를 대지 않은 채 의약분업을 추진하며 애먼 돈이 투입되고,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한방급여에 돈이 투입되고, 의사들이 반대했던 실손보험을 도입해 비급여에 돈이 투입되게 한 건 정부의 의료정책이었지 의사들이 아니었다.
의약분업, 한방급여, 실손보험 중 단 하나라도 의사들이 해달라고 애원한 것이 있었는가. 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외쳤지만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하며 밀어붙인 것은 정부였고 사회여론이었다.
의사들이 기피하는 필수의료를 살리려면 정책자금의 흐름을 필수의료 쪽으로 바꾸고, 의사들이 과도한 사법판결의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정상화될 것이라고 의사들은 계속 호소하는데도 정부는 의대 증원을 통한 의사 숫자 늘리기만 밀어붙이며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어느 세월에 비필수의료를 다 채우고 남은 의사들로 필수의료를 채우겠다는 말인가.
/주수호 前 대한의사협회장·미래의료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