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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들끓는 기숙사 탈출하려 대출… 한순간에 날아간 5800만원
지원받으려 꼬박 한달 고생… 피해자 구제 '제도적 구멍' 낱낱히 기록

■ 전세지옥┃최지수 지음. 세종서적 펴냄. 260쪽. 1만8천원


전세지옥 표지
인천 미추홀구, 경기 수원과 화성 등지에서 일어난 '전세사기'(경인일보 3월 17일자 10면 보도) 피해자 수천 가구의 삶이 송두리째 뽑혀 날아갔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들이 수도권에서 전세살이를 택한 이유는 부동산 투자(투기)로 한몫 두둑이 챙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 집은 아니지만, 직장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서 조금 더 나은 주거 환경에서 살고자 전세를 택했다.

시중 금리보다 비싼 월세를 아껴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꿈인 '내 집 마련'에 조금 더 가깝게 가고자 은행에서 전세자금을 대출받은 사람이 상당수였다. 전세사기로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앉은 이들 상당수는 청년이기도 하다.

'전세지옥'의 저자는 전세사기가 본격적인 사회 이슈로 떠오른 계기가 된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 훨씬 전부터 자신이 사는 충남 천안의 전셋집 빌라가 집주인과 부동산 중개업자 등이 결탁한 '사기'였음을 인지했다.

2021년 7월 5일, 저자가 국내 유명 대학의 해외 취업 프로그램 면접을 본 날이었다. 하루아침에 날아간 전세금은 5천800만원. 바퀴벌레가 들끓는 직장 기숙사를 탈출하려, 자신의 꿈인 파일럿 훈련비를 모으려 대출받아 마련한 돈이었다. 저자가 기록한 전세사기 이후 820일은 책 제목처럼 지옥을 연상케 했다.

"피해자는 전국 곳곳에 있는데 정부의 시선은 인천까지만 닿나 보다. 아니다, 인천의 목소리라도 들어서 다행이다. 그래도 서운하다. 왜 천안은 경매가 중단되지 않았을까. 인천 미추홀구처럼 우리 건물에서 누구 한 명이 죽어야 경매가 중지되는 것일까."

30대 초반의 저자는 전세대출을 갚기 위해 또다시 여기저기서 빚을 낸다. 그리곤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을까. 20~30대 젊은 나이에 부동산법의 빈틈과 허점을 야무지게 파악하지 못한 것이 죄일까? 부모님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우리 힘으로 전세를 얻으려 했던 것이 실수일까?"라고 자책한다.

해외 취업 프로그램에 합격해 헝가리에서 직장을 얻었지만, 전세사기 때문에 중도 귀국하고 횟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처지에 몰린다. 파일럿을 꿈꾸던 저자는 대출금을 갚기 위해 원양어선을 타기로 마음먹는다.

그 사이 제도권에선 어떤 도움을 받았을까. 저자는 긴급생계지원비를 받기 위해 필요한 서류인 '전세사기피해확인서'를 발급받는 데만 주거복지재단, 주택도시보증공사, 천안시청을 거치며 꼬박 한 달을 썼다.

저자는 "타이타닉 삼등칸에 탑승한 사람들이 침몰하는 배에서 구명보트 하나 없이 서로 껴안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것 같다"고 심정을 말한다. 전셋집 주택관리소로부터 집을 비우지 않는 "적대세력"이란 얘기까지 듣는다. 전세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와중인데도 그랬다.

'전세지옥'을 읽다 보면 전세사기가 왜 사회적 '재난'인지, 한국 사회가 이 재난을 예견하거나 피해자들을 구하는 데 얼마나 서툴렀는지를 깨닫게 된다. 피해자들은 지금도 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에 '피해자 지원 조례 제정' 등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런 호소에도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전세사기가 일어난 인천시는 아직 전세사기 피해 지원 조례가 없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