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 이승만 정권에 맞선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11일 마산에서 제2차 마산 시위가 일어났고, 곧이어 18일 서울에서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19일 전국 각지에서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3·15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바로 '4·19혁명'이다.
당시 300명 교문밖서 반독재 시위
'인천기계공고 4·19 기념사업회'
창립총회 동문 50여명 한자리에
"혁명정신 미래 세대에 전달할것"
인천에서는 당일 인천공고(현 인천기계공고) 재학생 300여 명이 1교시 수업이 끝난 후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3·15부정선거에 항거하며 일제히 교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시위대는 경인철도를 지나 시내 행진을 하던 중 제물포역에서 경찰과 충돌, 투석전을 벌였다. 부상자는 속출했다. 경찰에 연행된 어린 학생들은 고통스러운 심문을 견뎌내야 했다.
인천공고 학생들의 외침은 인천지역 각계각층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 인천기계공고 본관 앞엔 이승만 정권의 실각을 이끌어내는 데 힘을 보탠 당시 재학생들을 기리는 '4·19 학생의거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아직도 교문 앞을 나설 때 소리쳤던 함성이 생생한데 이렇게 정식 단체로 출범하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60여 년 전 4·19 학생 의거의 주역이었던 까까머리 고등학생들이 백발의 노인이 되어 16일 인천 연수구 한 음식점에 모였다. 인천기계공고 4·19혁명 기념사업회의 탄생을 지역사회에 알리는 창립총회가 열린 것이다.
창립총회에 모인 인천기계공고 50명의 동문은 지난 세월을 떠올리며 담소를 나눴다. 당시 인천공고 3학년 재학생이었던 (사)인천연수원로모임 명예회장 신원철(82)씨는 "인천의 4·19혁명을 기릴 수 있는 정식 단체가 출범했단 사실이 매우 기쁘다"며 "동문이 뜻을 같이해 이룬 성과라 더욱 의미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인천기계공고 4·19혁명 기념사업회 초대 회장으로 추대된 최승일(82)씨는 "우리 조직의 최우선 목표는 혁명정신을 잊지 않고 미래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라며 "매년 4·19혁명 기념행사를 주최하거나 강연회를 여는 등 시민에게 쉽게 다가갈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행사에 참석한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은 축사에서 "인천기계공고 4·19혁명 기념사업회의 출범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우리 어린 학생들이 인천기계공고 선배들의 민주화 운동을 잘 알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상우기자 beewo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