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명문 광주일고 선후배 관계
엄격한 위계질서 강하기로 유명
잠재력 발산토록 하는게 리더십
백업경험·후배보좌 명장 밑거름
KS 감독으로서 '명승부'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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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3년 한국시리즈는 야구인 염경엽과 이강철의 대결이었다. LG의 숙원을 해결할 적임자로 낙점된 염경엽 감독과 신생 kt를 강팀의 반열로 끌어올린 이강철 감독. '염갈량'과 '강철매직'의 별명은 이들의 지략과 리더십, 그리고 뛰어난 경기운영 능력을 말해준다. 수많은 세월을 동료로, 때로는 경쟁자로 살아온 두 감독이 마침내 정상에서 만났다.

두 감독 모두 야구명문 광주일고 출신이다. 1966년생인 이 감독은 동국대학교를 거쳐 고향 팀인 해태 타이거즈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선동열 선수와 함께 해태 왕조의 투수진을 이끌었다. 이강철 투수는 기복 없이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10년 연속 10승-100탈삼진'의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통산 152승(112패), 평균자책점 3.29의 준수한 성적은 한국 프로야구 언더스로 투수의 레전드로 손색이 없다. 염 감독은 이 감독보다 두 살 어리다. 고려대학교를 거쳐 인천을 연고로 한 태평양 돌핀스의 지명을 받았다. 그러나 선수로서 각광은 받지 못했다. 야구센스와 내야 수비는 높이 평가받았지만 타격이 취약했다. 주로 수비전문으로 활약했다. 통산 896게임에 출전했다. 타율은 0.195로 2할에 미치지 못한 '물방망이' 선수였다.

선수 염경엽의 기록은 이강철에 비할 바가 못된다. 그러나 지도자로서는 달랐다. 일찍 은퇴한 염경엽은 코치로 빨리 출발했다. 현대, LG에서 선수들과의 소통력, 전략적 사고의 강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40대에 히어로즈 감독으로 발탁되었다. 그때 염 감독이 스카우트한 이가 이강철이다. 코치 이강철은 고교 후배인 염 감독을 보좌했다. 2013년의 일이다. 재정이 어려운 히어로즈는 매년 우수 선수들이 유출되어 시즌 초에는 약체로 평가받았지만 포스트시즌에 꾸준히 진출했다. 권위주의를 버리고 후배의 능력을 존중하는 선배, 필요하면 불편할 수 있는 선배에게도 도움을 요청하는 후배. 이들은 진정한 프로라 할 수 있다. 이후 염 감독은 SK 와이번스의 단장과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팀의 지원은 좋아졌지만 우승은 달성하지 못했다. 이강철 코치는 히어로즈를 떠난 후 두산을 거쳐 마침내 2021년 신생 kt의 감독이 되어 우승으로 이끌었다. 감독은 늦었지만 우승은 먼저 달성한 셈이다.

야구판은 어느 분야보다 선후배의 위계질서가 강하다. 특히 광주일고 야구부의 엄격한 전통은 유명하다. 그렇지만 프로야구는 자본주의의 질서가 가장 극명하게 적용되는 곳이다. 능력에 입각한 경쟁이 기본원칙이다. 이곳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선수든, 코치든 자신의 위치에서 각자가 최대의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다고 위계질서가 무너지면 팀워크는 와해된다. 야구는 단체경기이기 때문이다. 팀의 질서를 유지하면서 모두가 자신의 잠재력을 분출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그것이 감독의 리더십이다. 스타 플레이어가 아닌 백업선수의 경험, 후배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 경력 등은 이들이 명장(名將)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 셈이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양팀 감독은 서로를 존중해 주었다. 염 감독은 사석에서 이 감독을 '형'으로 부른다고 했다. 이 감독 역시 코치시절 염 감독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배움이 감독으로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청소년기에 같은 팀의 선후배로 만난 동향, 동문의 두 야구인은 지난 30여년간 수많은 영광과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감독으로서 명승부를 펼쳤다. 2023년은 염 감독의 승리다. 염 감독은 우승 이후, LG왕조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그렇지만 이강철 감독도 가만히 지켜볼 수 없다. 그 왕조를 타도할 수 있는 유력한 적장(敵將)의 하나가 이 감독일 것이다.

이제 일년 중 팬들이 '가장 슬퍼하는' 야구시즌이 끝났다.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야구인으로서 희비가 계속 교차된 양 감독에게 다음 시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야구팬의 기대는 커진다. 29년의 우승숙원을 해결한 염경엽 감독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보낸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 이강철 감독에게도 감사함을 전한다. 2023년에도 kt는 우리 고장의 팬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내년에도 선전을 기대한다.

/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