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덕왕·현종 이어 제왕 사부곡 정조에 절정
현륭원 비롯해 수원화성·행궁이 바로 그것
감정 넘어 윤리성 회복 애도정치로 피어나길
애도는 또한 타자성을 훼손하거나 타자를 망각하지 않으면서 주체가 타자를 '환대'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것이 글쓰기든 예술이든 애도를 통해서 새롭게 생성되는 것은 '내 안의 타자' 또는 '애도하는 주체'이다. 이처럼 주체는 단독적·독립적이지 않고 관계적이면서 타자의 부름에 응답함으로써 생성되거나 주어지는 것이다.
애도는 슬픔이란 감정과 철학의 차원을 넘어서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것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한국사에 등장하는 역대 제왕들의 아버지에 대한 애도와 사부곡에서 애도의 정치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1993년 역대급 발굴로 꼽히는 백제의 금동대향로는 능산리 고분군 발굴 조사 과정 중 주차장 건설 현장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위덕왕이 자신의 아버지이자 선왕인 성왕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애도의 산물, 곧 사부곡이 낳은 걸작이다. 아버지 성왕은 관산성 전투 과정 중 매복하고 있던 신라군의 공격을 받고 포로로 잡혀 참수 당하고 만다. 위덕왕이 굴욕적이고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 성왕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사찰이 바로 능산리 사찰이다. 여기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는 당대 최고의 금속세공 기술이 응축된 걸작으로 독특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여기에 조각된 악사와 신선 등의 인물과 산·바위·나무 등의 자연물 그리고 동물들은 불교와 도교를 사상적 배경으로 한 상징물들로 백제 특유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보여준다.
고려 시대에도 제왕의 사부곡이 있다. 고려 제8대 왕 현종이 창건한 홍경사가 그것이다. 현종은 태조 왕건의 8남(男)인 안종 욱(郁)과 경종의 네 번째 비(妃)인 헌정왕후가 사통하여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다. 목종 말년 김치양의 난과 강조의 정변 등 혼란의 와중에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즉위 직후 거란의 침공을 받는 등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현종은 유교적 소양을 갖춘 관리들의 지지를 끌어내고자 아버지 욱을 내세운 효도의 정치와 더불어 중소 호족들의 신앙이었던 유식불교 즉 법상종을 적극 후원했다. 아버지 욱에 대한 그리움과 정치적 안정을 기원하며 세운 절이 충남 천안시 성환읍의 홍경사(弘慶寺)다. 홍경사는 절터와 갈기비(喝記碑)만 남아있는 상태다. 홍경사와 관련하여 조선시대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하나인 옥봉 백광훈의 시가 전해진다. '가을 풀과 전 왕조의 절/남은 비석에 한림학사의 글이로다/ 천 년 동안 흘러온 물이여/지는 해에 돌아오는 구름을 바라보네'.
위덕왕·현종에 이어 제왕들의 사부곡은 조선의 22대 왕 정조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다. 정조가 조성한 사도세자의 능침 '현륭원'을 비롯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유교 이념의 핵심인 효를 활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공간을 넓혀가는 동시에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에 대한 애도를 실천한, 애도 정치를 실천했다. 이처럼 애도는 단순히 감정적인 슬픔의 표현이 아니라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살펴보는 계기가 될뿐더러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 지속되는 여러 애도들이 슬픔을 넘어서 책임정치와 책임행정 그리고 윤리성을 회복하는 멋진 애도의 정치로, 또 문화로 피어나길 기원해본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