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채 소설가 - 안선모 장편소설 '굿바이 미쓰비시'


작가 줄사택 3호집에 살았지만
교사 되면서 살던 곳 역사 알아
쉽게 읽게 하려 주제 강요 안해
실제 사건·다양한 만행 등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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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미쓰비시. 안선모 지음. 청어람주니어 펴냄. 168쪽. 2021년 11월 22일
몇 년 전 부평 캠프마켓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오랜 세월 금단의 구역이던 그곳의 육중한 철문이 열린 것이다. 캠프마켓이 들어서기 전 일제강점기 그곳은 일본 조병창이었다.

만주를 침공할 야욕을 가진 일본이 부평을 대륙침략의 전초기지로 삼으려고 도시 한복판에 조병창이라는 무기제조 공장을 세운 것이다.

이 조병창 자리는 일본이 패망한 뒤 6·25 전쟁 때 다시 미군부대가 들어서 애스컴시티를 조성했고 오랫동안 부평 땅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가 지역사회의 오랜 반환운동 끝에 몇 년 전에야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곳이기도 하다.

안선모 작가는 부평 삼릉의 소위 줄사택 3호집에 살았다. 교사가 되어 2012년 부평남초등학교로 발령받아 오면서 자신이 살던 곳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조병창의 무기를 만들어대던 전범 기업 미쓰비시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숙소가 바로 자신이 살던 집이었다. 미쓰비시는 우리말로 삼릉이다. 역사를 전공했던 안선모 작가는 그런 사실을 몰랐던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료 조사와 공부를 하고 더 많은 어른과 아이들에게 부평의 조병창과 관련된 역사를 알게 하려고 청소년 소설 '굿바이 미쓰비시'를 썼다고 밝혔다.

이 소설은 부평 조병창과 미쓰비시로 불렸던 삼릉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과 그 시절을 겪어낸 소년 인수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수는 일본말을 배우는 학교를 첫사랑에 비유하고, 미쓰비시 공장에 취직해 무기를 만들고 싶은 꿈을 꾸지만 훈장님, 영삼이 형, 깍두기 형 등을 만나게 되면서 정신적 혼란을 겪는다.

특히 자신이 그렇게 동경해왔던 조병창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팔이 잘리고 손가락이 잘려도 어떤 처치도 보상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일본의 만행을 알고 놀란다. 나중에는 형들을 도와 아야코의 아버지가 제작한 설계도를 빼 오는 결정적인 역할도 하고, 행방을 몰랐던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다 만주로 갔다는 걸 알고 찾아 길을 나서기도 한다.

소설 속에는 영순 누나처럼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조병창에 취직하거나, 징용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조병창에 취직하거나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이 나오고, 또 조병창 노동자들이 산재처리 문제로 시위를 벌이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는 허구가 아니라 당시 실제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당시 황장연이라는 인물은 1943년 3월에 부평 조병창 내 30여명 동지들과 고려재건당을 조직해 비밀리에 무기를 밀반출하거나, 무기 제조법을 조직적으로 빼내 독립투쟁용 무기를 공급하기도 하는데 아마도 이 사실을 바탕으로 마지막을 이끌고 간 듯했다.

소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누구나 읽어도 쉽게 읽히며 무엇보다도 주제를 강요하지 않고, 또 깍두기 형이나 길용 아재의 반전 정체, 일본인 아이 아야코와의 만남 등은 소설에 힘을 주며 재미를 더한다. 작가는 일제강점기 과거의 일이 해결되지 않은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도록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지금의 부평공원은 미쓰비시 공장이 있던 자리로 공원에는 매일 많은 사람이 운동이나 산책을 하지만 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상과 소녀상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이는 적다.

부평미군부대가 개방되고 부대 안에 남아 있던 일제강점기 조병창 병원 건물이 주목을 받았다. 조병창 병원 건물은 조병창본부 역할도 하고 8·15 광복 이후에는 위수병원으로 이후 부평 캠프마켓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증거물로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당시 건물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일본이 군함도를 유네스코에 등재하면서도 정작 강제징용을 덮으려는 행태에 치를 떨면서도 바로 우리 곁에 있는 명확한 징용증거물을 없애고 호수공원이나 자연녹지로 만들자는 얘기는 가슴 아프다.

캠프마켓 주변에서 발견된 지하호 중 한 곳을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이 컴컴하고 어두운 곳에 끌려와 단단한 돌을 깨며 굴을 파야만 했던, 인수를 닮은 어린 소년을 떠올리자 지하호는 한층 더 어두워졌고, 한없이 먹먹하고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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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재단 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