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예수의 마지막 유혹 소설로 극화
메시아적 숙명 마주한 인간 고뇌
사람다운 삶·국가다운 국가 위해
자본·권력 넘어선 규범·원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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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최후의 유혹'은 그리스도교의 신, 예수가 마주한 마지막 유혹을 극화한 책이다. 이 소설은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물로 내어줌으로써 인류를 위한 구원 사업을 완성해야 하는 메시아적 숙명과 마주한 인간 예수가 겪는 고뇌를 서술함으로써 많은 논란을 빚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기희생을 통해 인류를 구원해야 한다는 메시아적 사명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인간적인 갈등과 회의, 삶에 대한 욕망과 행복에의 유혹에 허덕이는 나약한 마음을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에서 하느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것은 겪기 힘든 고통과 심지어 자신의 죽음마저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절대적 과제였다. 그 극한의 질문 앞에서 마지막 유혹에 허덕이는 인간다움을 카잔차키스는 이 소설을 통해 잘 묘사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현실에 발을 딛고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이상의 삶을 향해 나아가길 원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면 우리는 진지하게 이 질문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행복과 안락함, 외적인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일까? 현실을 넘어섬으로써만이 그 이상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괴로운 진실과 마주한 인간이 그를 향한 근본적 전환을 결단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인간은 그 앞에서 대답해야 한다. 그 질문과 결단 앞에서 고뇌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일 것이다.

계몽주의적 근대는 하나의 규범과 이념으로 통합적 세계를 지향하던 중세를 넘어 개인의 자유의지와 규범, 이성의 원리를 중심으로 세계를 새롭게 기획하려 했던 시대였다. 지금 우리는 그 근대라는 시대의 계몽적 원리와 함께,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에 의해 체제화된 후기 산업사회를 살고 있다. 지금 이 근대의 기획과 체계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표징이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다. 이미 사라진 전 근대적 규범과 아직 다가오지 않은 근대 이후의 기획 사이에서 허덕이는 것이 지금 이 시대의 모습이다. 이 모습은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나 자신의 실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람의 아들로서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최후의 유혹에 마주한 지상 예수처럼 우리 역시 결단해야 한다. 이러한 근본적 질문과 결단에의 요구는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에서 제기된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하는 인간적인 질문임을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

최후의 유혹은 예언자의 삶을 시작하려던 예수가 처음 마주한 유혹에 대비된다. 그 유혹에 대해 그는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모든 이의 추앙은 물론 심지어 메시아가 될 수 있다는 악마의 달콤한 제의를 거부함으로써 이겨낸다. 이로써 그는 신적 소명을 수행할 수 있었다. 최후의 유혹을 이겨냄으로써 그는 지금의 그리스도교에서 보듯이 신의 아들로 거듭나게 되었다. 카잔차키스는 특정 종교의 이념을 극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마주하는 보편적 유혹과 인간다움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되는 인간다움은 그의 묘비명에 잘 쓰여있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인이다'.

진정 자유인이 되고 싶다면 우리는 자본과 권력을 원하는 삶을 넘어서야 한다. 진정 인간다운 삶을 원한다면 그 원의에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유인이 되기 위한 결단과 그를 위한 삶의 원리를 찾아야 한다. 그럴 때만이 현실에 안주하려는 비릿한 유혹을 넘어설 수 있다. 이런 결단은 공동체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한 국가가 국가다운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본의 풍요와 정치권력을 넘어서는 공동체적 규범과 원리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이런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경멸하기까지 하는 이 현실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온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외적 삶을 넘어서는 그 이상을 지향하는 규범과 원리가 필요하다. 역사에서 보듯이 그러한 공동체적 규범과 원리를 정립하지 못한 국가가 경제적 풍요와 권력만으로 유지된 예는 전무하다. 나와 우리의 삶을 위해 지금 이 달콤한 유혹을 벗어나 그 이상을 향해 결단해야 한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