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독자들에게 셰익스피어와 윤동주는 꼭 거쳐 가는 필수 코스다. 셰익스피어는 '전능한 천재요, 문학의 신'이라는 사무엘 코울리지나 윌리엄 해즐릿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세계문학의 정점에 서 있는 작가다. 윤동주는 영원한 청년 작가로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교과서 문학의 대명사다.
윤동주는 29세의 젊은 나이에 이역만리 타국의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그의 작품은 사후 3년이 지난 1948년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묶여 나왔다. 생전에 그는 83편의 시와 5편의 산문을 포함해서 모두 125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에 대한 평가의 대체는 시대의 아픔을 자기화했으며 자아 성찰과 내면적 자아 응시를 통해 부끄러움의 미학을 완성했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에 대한 연구와 비평이 많이 있으나 개인적으로 그의 문학은 시인 자신이 자기에게 말을 건네는 위로이자 식민지 지식 청년의 비망록, 곧 시로 쓴 일기라 생각한다. 고백 형식의 문학은 작가의 생각과 내면세계를 독자가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간의 생리상 대개 고백이야말로 최고의 은폐 방법일 수도 있기에 믿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으나, 윤동주의 작품은 개인의 일기이기에 그대로 믿어도 좋은 솔직담백한 작품이다. 필시 이런 점들이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며, 공명을 일으키게 하는 이유일 터이다.
얼핏 보아 체급도 다르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작가가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만났다. 찰스 3세 국왕이 21일(현지시간) 국빈으로 초청한 윤석열 대통령과 만찬을 하며 영어로 번역된 윤동주의 시 '바람이 불어'를 낭송하자 윤 대통령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04번의 첫 구절 "나에겐 아름다운 친구여, 그대는 결코 늙을 수 없나이다"로 화답했다.
언어의 상찬이 오가는 외교 무대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영제국의 작가요 제국의 정전(canon)인 셰익스피어와 식민지 치하의 청년 시인이 만났다는 것은 사건이며, 상징적 의미가 크다. 이를 계기로 한-영 양국 관계가 윤 시인의 '바람이 불어'의 한 대목처럼 "반석 위에 서"길 바라며, 피와 수탈로 얼룩진 제국주의 시대의 상처를 딛고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하나의 가족처럼 지내는 평화와 상생의 대동세계(大同世界)가 열리길 고대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