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무역장벽 '탄소중립'·(上)] 인천도 대응해야 한다
제품 생산과정 배출 추정치에 세금
시범 도입 후 '전환기' 보고 의무화
고객사 측정 자료 제출요구에 막막
20~30개 부자재 중국산탓 파악 한계
"외주 한차례 800만원 큰부담" 한숨
2026년부터 EU는 탄소 배출량 기준 초과 기업에 세금을 부과한다. 국내 수출 기업은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특히 중소기업은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실질적인 지원책을 내지 못한다. 경인일보는 두 차례에 걸쳐 탄소중립 시대 인천의 현실, 그리고 지자체가 풀어야 할 과제를 짚는다. → 편집자 주
지난 22일 오후 2시께 방문한 인천 남동구 A철강. 공장 내부에 들어서니 새빨간 불빛을 내뿜으며 선철·고철을 녹이는 용해로가 보였다. 금속호일 열선으로 구성된 용해로는 대량의 전기를 끌어와 온도를 1천400℃까지 끌어올렸고, 그 열이 철을 녹이고 있었다.
이 공장은 전기에너지를 활용해 선철·고철 등을 녹인 뒤 모래 거푸집에 부어 제품을 만든다. 회사 관계자 안내를 따라 공장을 더 둘러보니 제품에 섞는 가탄제, 물건을 싣고 나르는 크레인, 공장 곳곳에 쌓여있는 부재료 등이 눈에 띄었다. 공장 내부는 뿌연 연기로 가득했고, 기계들은 쉴 새 없이 "깡, 깡" 소리를 내며 철강 제품을 쏟아냈다.
현재 A철강 탄소 배출량은 1만5천tCO2-eq(이산화탄소 환산량)를 밑돌고 있다. 정부는 1만5천tCO2-eq를 상회하는 사업장을 '온실가스 목표관리제' 대상으로 지정해 매년 배출량을 모니터링한다. 감축 목표를 받아 이행 계획에 따른 명세서를 제출하는 일이 전담 인력이 없는 중소기업 처지에서 쉽지 않다. 이 공장은 한때 목표관리제 대상으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생산량이 줄면서 제외됐다.
하지만 A철강에 최근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지난달부터 도입된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CBAM)가 그 원인이다.
A철강은 매출의 절반 가량을 해외 수출로 채운다. 회사 관계자는 "당장 하루하루 먹고 사는 데에만 집중하면 될 줄 알았는데,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남의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유럽연합(EU)이 제시한 일종의 무역관세다. 시멘트·전기·비료·철강·알루미늄·수소 등 제품을 EU에 수출하면 해당 제품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 추정치에 세금을 부과하는 조치다.
EU가 본격적으로 탄소 관세를 부과하는 건 오는 2026년. EU는 기업들이 새 제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전환기를 설정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당장 EU가 지난달 1일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시범적으로 도입하면서 '전환기'가 시작됐다. EU는 CBAM을 본격화하기 전 '탄소배출 보고'를 의무화했다. 전환기 중 보고 규정을 이행하지 않는 기업은 배출량 1t당 10~50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
EU의 이 같은 조치는 인천 A철강에도 곧바로 영향을 미쳤다. 이 회사 주요 수출국에는 독일·스페인 등 EU국가가 포함돼 있는데 이 중 독일의 한 고객사는 지난달 중순께 A철강에 탄소 배출량 측정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탄소 배출량을 측정(계산)하려면 공정 전반에 대한 탄소배출 계수(공식)를 알아야 한다. 탄소 배출은 직접 배출(Scope 1)과 간접 배출(Scope 2), 가치사슬 전반에서의 배출(Scope 3)로 나뉜다. 직접 배출은 현장에서 연료를 사용하면서 직접 배출되는 것을, 간접 배출은 전기 등 에너지를 쓰면서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직접 배출과 간접 배출량을 측정하는 공식은 상용화돼 업체가 개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문제는 가치사슬 전반에서의 배출이다. 공정에 쓰이는 부자재 등 개별 상품의 배출량을 모두 포함해야 하는데, 웬만한 전문 업체가 아니면 탄소 배출 계수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
A철강 관계자는 "저희 공장에서만 20~30개가 넘는 부자재를 공정에 쓰고 있는데, 대부분 중국산이라 우리가 직접 탄소 배출 계수를 알아내기 힘들다"며 "탄소 배출량을 전문적으로 측정해주는 컨설팅 업체에 외주를 맡기면 한 차례에 800만원 정도가 든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정말 큰 부담"이라고 했다.
이어 "독일 고객사가 3개월 또는 6개월에 한 번씩 탄소 배출량 자료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자료를 안 내면 우리와 거래를 끊을 텐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관련기사 ("배울 곳 없고 계획도 없어…" 인천기업 '탄소국경' 무방비)
/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