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로로 잊었던 과거의 가치 재발견 못해
대중적 취향 흐름으로 공공 개입은 최소화
진정한 기억은 장소 고통·시련도 되살려야

열차 운행이 멈춘 후 폐허로 서 있던 시골역이 어느날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단장하여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레트로(retro)는 회고나 추억을 뜻하는 레트로스펙트(retrospect)를 줄여 부르는 약어처럼 쓰이다가 이젠 단어로 자리잡았다. 그렇지만 문화산업이나 관광 분야는 그렇다치고 레트로에 편승하려는 지방정부의 박물관 전시, 도시재생 사업, 문화정책 등은 되돌아봐야 한다.
복고풍의 유행은 과거에도 있었고 다른 문화권에도 있었기에 주기적 문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과거에는 패션 분야에 국한되거나 단기간에 그쳐 문화산업 전분야로 파급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의 레트로 열풍은 예외적인 데가 있다. 급속한 산업화와 문화적 변화를 체험해온 한국사회의 기성세대들이 느끼는 정서적 회귀 본능 때문일 수도 있고 K팝과 한류문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 계기일 수도 있다.
기성세대들에게 레트로는 일종의 향수 같은 것이다. 연탄 화덕이나 양은 도시락 같은 생활소품들, 검은색 옛날 교복, 빛바랜 가족사진은 지난날의 추억을 환기하는 오브제가 되었다. 이제 먹고사는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그런데 정작 레트로의 주요 소비자는 MZ세대라는 점이다. 이들은 옛날 교복을 입은 적도 연탄불에 익힌 밥을 먹은 추억도 없는 세대들이다. 이들에게 레트로 콘텐츠들은 흘러간 과거가 아니라 편의점의 진열장에 놓여 있는 상품처럼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의 하나, 즉 '공시적(synchronic)' 접근 대상인 것이다.
레트로 콘텐츠는 시간을 소거한 과거로 소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흘러간 과거를 아예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을 '뉴트로(newtro)'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과거를 돌아보며 잊어버렸던 가치를 재발견하는 태도라고 할 수는 없다. 레트로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의 주인공 황약사가 들고 다니는 '취생몽사'처럼 기억을 잊게 해주는 술과 닮았다. 레트로 감성이 '기억이 제거된 추억'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역사의 무게나 고통을 괄호치고 얻는 달콤함이라는 점 때문에 시대정신이나 공동체적 가치로 자리잡기는 어렵다.
레트로에 대한 공공의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상업의 영역이며 대중적 취향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견디는 유행은 없다. 레트로 카페의 산만함이나 가벼움에 대한 네티즌의 게시물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과 몇몇 상품의 판매 통계는 절정이 지났다고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
도시재생사업을 보자. 장소성의 회복이란 터의 겪은 역사적 켜(layer)와 공간적 맥락성을 복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특정한 지역이나 터전이 사람들과 가졌던 본연의 관계, 사회적 역할과 정서적 기능을 살펴보고 되살려낼만한 가치 요소를 찾아야 한다. 관광활성화라는 강박증에서 벗어나, 지역이 삶의 터전으로서 주민과 가졌던 본연의 관계, 사회적 역할과 정서적 기능을 살펴보고 복원할 수 있는 요소를 찾는 방법이다.
장소성은 장소의 역사이며 장소를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진정한 기억이란 미담이나 신화도 있지만 장소가 겪어온 고통이나 시련도 마땅히 되살려야 하는 것이다. 막연한 동경이나 노스탤지어에 호소하는 장소나 거리는 '위생처리된 기억'으로 복고심리를 자극하는 소모품이 되고 만다. 장소성 회복의 핵심은 오히려 터가 가지고 있던 공유 기능의 회복이다. 개인이 점유하거나 상품이나 상품생산용으로 변질된 공간을 다시 시민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공유가능한 곳으로 만드는 일이 되어야 한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