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전도유망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무작정 미술관으로 향한 저자의 선택은 '도피'가 아닌,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는 또 다른 '첫걸음'이었다.
브링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며 묵직한 사색의 시간을 보낸다. 한순간 화이트칼라에서 블루칼라가 된 그는 거장들의 경이로운 회화와 조각 등 걸작들과 교감하기도 하고, 푸른 제복 아래 저마다 무수한 사연을 안고 있는 동료 경비원들과 연대한다.
그렇게 저자는 삶과 죽음, 일상과 예술의 의미를 하나씩 발견해가면서 느낀 소회를 13개의 챕터를 통해 이야기한다. 책은 저자의 통찰을 일방적으로 전하기보다는, 미술관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전직 기자답게 세계 3대 미술관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벽에 걸린 걸작과 풍경을 아름답게 스케치해 글로 풀어낸다.
걸작들 한복판에 서 있는 미술관 경비원이 무료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수려한 문장 사이로 왠지 모를 이질감이 들기도 한다. 이는 비판 지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 책만의 매력이다. "나는 거북이처럼 흐르는 파수꾼의 시간에 굴복한 것 같다. … 나는 사치스러운 초연함으로 시간이 한가히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구식의, 어쩌면 귀족적이기까지 한 삶에 적응해버렸다."
이렇게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뉴욕에 거주하는 중산층 화이트칼라 남성이 자연스러운 방식으로는 겪지 못할 세상을 자발적으로 체험한 수기를 아름답게 펼쳐낸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