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문예지원' 예산삭감 위기에도
'영상 제작' 1년간 학생들 큰 호응
"고민속 생각 넓어지고 추억 생겨"
"이공계열로 진학할 거지만, 창작물을 만드는 직업을 가질 생각이에요."
부천시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진서아(18·여) 학생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이과를 택했지만 늘 아쉬움이 있었다고 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공상들을 창작물로 풀어내고 싶은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학교 축제에서 무대를 직접 기획하고, SF소설쓰기 수업을 찾아 듣기도 했지만, 막상 창작과 관련된 진로를 정하는 건 겁이 났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다 분기점이 찾아왔다. 학교 정규시간에 열린 '영상제작' 수업이었다. 일주일에 1번씩 예술강사가 학교로 찾아와 영상 기획부터 편집까지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촬영 기법을 배우고, 영상을 제작하면서 서아양은 창작자라는 꿈에 확신이 생겼다.
그는 "창작 관련 활동을 할 때마다 공부에 쏟아야 하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수업을 들으면서 할만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혼자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벌써 30페이지가 넘어갔다. 이공계 회사를 가더라도 소설은 계속 쓸 것 같다"며 웃었다.
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해 전문 예술강사를 학교로 파견하는 '학교문화예술지원사업'의 내년도 예산이 50%가량 삭감될 위기에 처하면서(11월9일자 7면 보도) 일선 학교의 문화예술수업 시수 역시 절반가량으로 줄어들 예정인 가운데 부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1년 동안 문화예술교육을 받은 2학년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들은 지난 3월 반별로 3~4팀을 꾸린 뒤 1년 동안 팀별로 단편영화 1편씩을 만들었다. 학생들은 영상제작 활동을 통해 진로를 찾고 협업을 배웠으며 수업 자체가 즐거웠다고 했다.
백민제(18) 학생은 팀원들과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히 생각이 넓어졌다"고 했다. 전달하고 싶은 주제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다 보니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영상의 주제는 사람은 모두 장단점이 있으니 나를 받아들이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처음에는 선생님과 학생이 상담하는 구성을 짰다. 그런데 한 팀원이 '평행세계에서 다른 나를 불러들이는 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를 내면서 구성을 뒤바꿨다. 평행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비현실적이고 재미있는 연출을 상상하면서 생각이 뻗어나간다는 감각이 들었다"고 했다.
새로운 분야를 배우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작년에 부상 때문에 축구선수의 꿈을 포기했다는 홍동채(18) 학생은 새로운 흥미를 찾지 못해 공부할 의지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영상제작은 아예 새로운 분야라 흥미가 생겼다고 했다. 간호사를 꿈꾸는 이승원(18) 학생 역시 친구들과 영상을 만드는 경험 자체가 즐거웠다고 했다.
그는 "으슥한 분위기가 필요해 해질녘에 뒷산에 올라 촬영했던 것과 주말에 사복을 입고 만나서 촬영했던 것들이 모두 추억으로 남았다"며 "취미로라도 계속 영상제작을 하고 싶을 만큼 좋아서 후배들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