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반란때 육참차장의 결정적 오판
챗GTP 산실 오픈AI 반란 수츠케버의 오류
'회군'과 '투항' 惡 막을 마지막 기회 사라져
'생성형 AI, 인간 지배 가능성' 불길한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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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서울대 객원교수·객원논설위원
12·12 군사반란 당시 윤성민은 갓 부임한 육군참모차장이었다. 맹렬하게 흥행의 기세를 올리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에서 배우 유성주가 연기한 '민성배 중장'이 바로 그 사람이다. 쿠데타가 발발하자 납치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직무대행 자격으로 반란군 진압에 나선다. 즉각 육군 지휘부를 소집하는 한편 전 부대 지휘관들에게 부대 장악과 출동 통제 지시를 내렸다. 이때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다음단계에서 결정적 오류를 범한다. 자신의 지시로 출동한 9공수특전여단이 반란군 병력보다 먼저 서울로 진입할 수 있는 상황. 궁지에 몰린 반란군 지휘부가 상호 병력 동원금지를 제의하는데 이를 덜컥 받아들인다. 수를 잘못 읽었다. 그는 9공수에게 회군 명령을 내렸다. 반면 반란군 측 1공수는 그대로 서울로 진입해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점령한다. 저항은 미미했다. 판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지난달 챗GPT의 산실 오픈AI에서 발생한 '반란'에서도 오류의 행보를 보인 인물이 등장한다. '서울의 봄' 못지않은 드라마틱한 전개 과정을 보여준 사내 정변에서 초반 주도권을 쥐었던 수석과학자 일리야 수츠케버다. 공동창업자 겸 사내이사 3인 중 한 사람으로서 인공지능(AI) 개발 총괄책임자인 그는 11월17일 역시 공동창업자이자 사내이사인 CEO 샘 올트먼과 이사회 공동의장 그렉 브록만을 전격적으로 해고한다. 효율적 이타주의자들(Effective Altruists)인 3명의 사외이사와 결의해 일으킨 반란이었다. 다음날 전 직원회의에서 "쿠데타가 아니냐"는 성토가 빗발쳤다. 수츠케버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사회는 비영리단체의 사명, 즉 모든 인류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인공일반지능(AGI)을 구축하기 위한 의무를 다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오픈AI는 일론 머스크와 함께 공동설립한 비영리단체가 영리법인을 지배하는 독특한 경영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후 상황은 수츠케버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11월19일 밤 마이크로소프트가 올트먼의 영입을 발표했다. 자정을 넘기면서 오픈AI 직원들이 이사진 전원 사임과 올트먼의 복직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아침 무렵엔 직원 770여 명 중 95% 이상이 서명에 참여했다. 그날 밤 수츠케버는 "이사회의 행동에 동참한 것을 깊이 후회한다"는 메시지를 SNS에 띄운다. 올트먼의 복직 촉구 동의서에도 스스로 서명했다. 수츠케버의 갈지자걸음과 함께 반란도 막을 내렸다.

미디어들은 이번 사건을 AI의 잠재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부머(boomer)', 즉 개발론자와 AI가 인류에게 실존적 위험이 된다고 보는 '두머(doomer)', 파멸론자의 대결로 정리한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AI를 증기기관, 전기, 개인용 컴퓨터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혁신의 도구로서 번영과 수익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비전과 인간을 장악하고 죽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외계생명체로 인식하는 비전간의 충돌로 해석했다. 결과는 우리가 지켜본 그대로다. 오픈AI의 반란은 AI 개발이 인간의 개입이 없어도 스스로 사고하고 학습하는 단계인 AGI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알파고 논문의 공동저자,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선정한 '30세 미만 혁신가', 그리고 챗GPT 개발의 주역인 수츠케버는 AGI의 조속한 현실화와 상품화를 위해 가속페달을 밟는 올트먼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하지만 끝내 압박을 견뎌내지 못하고 백기를 들고 만다.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겠지만 윤성민의 '회군'과 수츠케버의 '투항'은 각각의 차원에서 악(惡)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소멸이었을지 모른다. 지나간 역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가올 미래 역시 빗나가지 않을 것 같은 이 불길한 예감이란. "생성형 AI가 인류의 지능을 넘어서 인간사회를 지배할 가능성이 있다"고 재차 경고하는 이 분야의 제1인자이자 수츠케버의 스승 제프리 힌턴 교수의 그제 요미우리신문 인터뷰기사를 접하면 예감은 확신으로 바뀐다. 불과 나흘의 그 짧은 시간이 인류의 미래를 이미 결정지은 '빅뱅'의 순간이었을까.

/이충환 서울대 객원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