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번째 단편집 '개그맨' 포함
16세 아이에 책 5천권 해킹 당해
그에게 50권쯤 읽게하면 어떨까
어쨌든 돈으로 환산 못하는 독서
소중한 재산이므로 손해는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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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소설가
이따금 소설가에도 '이건 참 소설 같은데'라는 상황이 찾아온다. 출판사에서 메일을 받았다. 알라딘 커뮤니케이션에서 전자책이 해킹당해 5천권 가량이 유출되었는데, 내 첫 번째 단편집 '개그맨'도 포함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범인은 16세 고등학생으로 텔레그램에 해킹된 책의 일부분을 자랑삼아 올려놓은 뒤 36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지급하라며 회사와 협상을 시도했다. 9월에 범인은 잡혔으나 이미 '손을 탄' 책들의 운명이 가늠되지 않는 가운데 이번에는 알라딘과 50여 개의 출판사 사이에서 보상을 놓고 대립 중이다. 출판사는 초유의 사태에 제대로 된 선례를 남기기 위해 개별 보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알라딘은 '사회기금'을 조성해 피해 출판사의 전자책을 사서 도서취약계층에 주는 등 사회적 보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출판사들이 신간의 전자책을 알라딘에 넣지 않는 사태로 이어진 것이 최근까지의 진행 상황이다.

이 뉴스는 나에게 복잡한 마음을 안겨주었다. 내 머리 속에는 5천권의 책들이 인질로 잡혀있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16세의 해커, 그 아이에게 이 책들은 단지 전자화된 프로그램에 불과하고 수십억대의 코인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일 뿐이다. 비가시적인 세계에서 비가시적인 세계로의 전환과 대박의 꿈만이 책들의 유일한 가치다.

그런데 5천권의 책 가운데 한 권인 내 첫 책에는 등단작을 비롯해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대학 졸업 후 8년이 지나 등단을 했는데, 등단작이 은퇴작이 될까봐 겁에 질려 무수히 밤을 새웠다. 젊음과 시간과 에너지와 숱한 불면의 밤들이 통과한 그 이야기들은 내게 소설 쓰기를 가르쳐줬을뿐더러 지독한 육체노동의 결과물이다. 중년이 된 지금, 갈수록 소설쓰기가 육체노동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다. 한마디로 작가에게 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노동의 가시적인 결과물이다. 그 아이는 전혀 상상해 본 적 없는 시간과 노동이겠지만.

한편 나는 20대부터 지금까지 쭉 알라딘에서 책을 구매해온 소비자이기도 하다. 플래티넘 회원이 될 만큼 많은 책을 살 돈은 없지만 그래도 골드나 실버 회원을 넘나들 만큼 책을 구매하고, 알라딘 킨들을 사서 외국에 사는 친구에게 선물한 후 지속적으로 전자책을 선물하고 있다. 16세의 아이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사실 이 회사다. 회사의 경영인들은 철없는 십대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자사의 사회기금'으로 '자사의 전자책'을 또 사서 돌리겠다는 발상에서는 철두철미하게 손해보지 않겠다는 기업의 비린내가 진동한다. 많은 전자책 플랫폼 중에 유독 알라딘만 보안이 뚫렸다는 것은 그만큼 허술하게 다뤘다는 것, 보안에 돈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돈 때문에 해킹하고, 돈으로는 손해 보지 않겠다는 도서플랫폼 회사 사이에서 5천 권의 책들은 '비트코인의 가능성'이 되었다가 '사회기금 방안'이라는 인질로 변해있다. 어느 쪽이든 책을 쓴 저자들의 노동과 마음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헤아려보지 않았을 것이다.

오래 전 대형서점에서 상습적으로 책을 훔친 노인을 잡았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범행동기를 묻자 '너무 읽고 싶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법에는 걸리는 행위겠지만 노인이 그 책들을 정말로 다 읽었다면 용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16세의 해커에게 5천권 중에 50권만이라도 골라 읽게 만들면 어떨까? 책들이 그를 바꿀 수 있을까? 책이 단지 '코인 환전 가능성' 이상이라는 것을 깨달을 만큼? 십대에 좋은 책 오십 권을 읽는다면 그럴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알라딘 대표는? 보상안을 내놓기 전에 500권쯤 읽으면 저자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될까? 풀려나간 책들을 읽기라도 했다면 사회적 기금 운운하는 방안에 전향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책을 읽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자신의 소중한 재산으로 남으니 손해 보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김성중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