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아이에 책 5천권 해킹 당해
그에게 50권쯤 읽게하면 어떨까
어쨌든 돈으로 환산 못하는 독서
소중한 재산이므로 손해는 아냐


이 뉴스는 나에게 복잡한 마음을 안겨주었다. 내 머리 속에는 5천권의 책들이 인질로 잡혀있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16세의 해커, 그 아이에게 이 책들은 단지 전자화된 프로그램에 불과하고 수십억대의 코인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일 뿐이다. 비가시적인 세계에서 비가시적인 세계로의 전환과 대박의 꿈만이 책들의 유일한 가치다.
그런데 5천권의 책 가운데 한 권인 내 첫 책에는 등단작을 비롯해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대학 졸업 후 8년이 지나 등단을 했는데, 등단작이 은퇴작이 될까봐 겁에 질려 무수히 밤을 새웠다. 젊음과 시간과 에너지와 숱한 불면의 밤들이 통과한 그 이야기들은 내게 소설 쓰기를 가르쳐줬을뿐더러 지독한 육체노동의 결과물이다. 중년이 된 지금, 갈수록 소설쓰기가 육체노동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다. 한마디로 작가에게 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노동의 가시적인 결과물이다. 그 아이는 전혀 상상해 본 적 없는 시간과 노동이겠지만.
한편 나는 20대부터 지금까지 쭉 알라딘에서 책을 구매해온 소비자이기도 하다. 플래티넘 회원이 될 만큼 많은 책을 살 돈은 없지만 그래도 골드나 실버 회원을 넘나들 만큼 책을 구매하고, 알라딘 킨들을 사서 외국에 사는 친구에게 선물한 후 지속적으로 전자책을 선물하고 있다. 16세의 아이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사실 이 회사다. 회사의 경영인들은 철없는 십대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자사의 사회기금'으로 '자사의 전자책'을 또 사서 돌리겠다는 발상에서는 철두철미하게 손해보지 않겠다는 기업의 비린내가 진동한다. 많은 전자책 플랫폼 중에 유독 알라딘만 보안이 뚫렸다는 것은 그만큼 허술하게 다뤘다는 것, 보안에 돈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돈 때문에 해킹하고, 돈으로는 손해 보지 않겠다는 도서플랫폼 회사 사이에서 5천 권의 책들은 '비트코인의 가능성'이 되었다가 '사회기금 방안'이라는 인질로 변해있다. 어느 쪽이든 책을 쓴 저자들의 노동과 마음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헤아려보지 않았을 것이다.
오래 전 대형서점에서 상습적으로 책을 훔친 노인을 잡았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범행동기를 묻자 '너무 읽고 싶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법에는 걸리는 행위겠지만 노인이 그 책들을 정말로 다 읽었다면 용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16세의 해커에게 5천권 중에 50권만이라도 골라 읽게 만들면 어떨까? 책들이 그를 바꿀 수 있을까? 책이 단지 '코인 환전 가능성' 이상이라는 것을 깨달을 만큼? 십대에 좋은 책 오십 권을 읽는다면 그럴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알라딘 대표는? 보상안을 내놓기 전에 500권쯤 읽으면 저자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될까? 풀려나간 책들을 읽기라도 했다면 사회적 기금 운운하는 방안에 전향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책을 읽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자신의 소중한 재산으로 남으니 손해 보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김성중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