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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은 속재료에 따라 지역별로 고유한 맛을 낸다. 속초에선 예전부터 오징어 이리(정소)로 김장 소를 버무렸다. 오징어 내장은 쉽게 부패하니 이리 김장은 동해안 오징어 산지에서나 가능했다. 오징어철이 10월경부터이니 김장철과 겹칠 뿐 아니라, 오징어가 넘쳐나니 할복장에서 이리 구하기는 일도 아닌 데다, 가격이랄 것도 없이 저렴했으니, 오징어 포구의 김장거리로는 금상첨화였다.

오징어 이리로 숙성한 속초 김장 맛이 추억 속에 봉인됐다. 오징어가 사라진 탓이다. 덩달아 이리 구하기도 힘들 뿐 아니라 금값이 됐단다. 포구의 서민들은 없어서, 비싸서 옛맛을 포기한 채 추억으로 입맛을 다신다.

해마다 사계절 찾아간 속초인데 시나브로 사라진 오징어를 의식하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만원 지폐 몇 장이면 한 보따리 챙겼던 생오징어가 난전에서 사라졌고, 오징어 가격은 '시세'로 표기됐다. 청초호와 아바이 마을 사이에 늘어선 오징어 할복장들도 인적이 끊긴 지 꽤 됐다. 오징어가 사라진 포구에 주말마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포구의 아낙들은 민박을 운영한다.

명태에 이어 동해안 겨울 경제를 지탱했던 오징어가 금징어가 됐다. 2000년대 초 2만t이던 강원도 오징어 어획량이 뚝뚝 떨어져 올해는 11월까지 1천300t으로 급락했다. 오징어 섬 울릉도에서도 사라졌고, 경상북도 포구도 사정은 마찬가지란다.

오징어 실종 사건의 용의자로 기후변화와 중국어선의 남획이 유력하다. 동해안 수온이 상승하면서 한류성 어종인 오징어의 이동 경로가 북상했다. 기후가 미치니 오징어떼가 길을 잃어 서해안으로 흘러들기도 했다. 차가운 수온을 찾아 북상한 오징어를 북한 수역을 장악한 중국 어선들이 싹쓸이한단다.

명태가 증발하면서 동해안 경제가 휘청이고, 산업이 달라지고, 어민들의 삶이 변했다. 오징어 실종 사건이 불러올 나비효과가 시작됐다. 오징어 채낚기 어부들은 조업을 포기한 채 배를 내놓고, 정부는 긴급대출 지원에 나섰다. 동해안 밤바다를 수놓던 오징어 조업선 조명등이 사라질 때 짐작했어야 할 사태였다. 수입산 대왕오징어로는 대체 불가능한 '맛'도 사라지고, 동해안 포구를 채웠던 오징어 덕장 풍경도 사라질 테다.

다 자라기도 전에 여름철에 건져 올린 총알오징어를 통째로 구워먹고 쪄먹었던 탓도 크단다. 오징어 실종 사건의 공범인 듯하여 마음이 무겁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