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상황 몰기 과장 심하지만
'종결 이야기' 뭘지 상상 힘들어
저렴하다 못해 싸구려 돼버린
우리 삶 문틈에 벌거벗은 채 있다

"당신에 대해 말해주세요." "노래해 보세요." "다 벗어봐요." "나를 유혹해 보라고 요구할게요." 금방 누구의 말인지 짐작할 수 있다. "준비됐습니다." "전 이 면접 준비를 위해 여러 시간 코칭을 받았어요… 나 자신을 잘 소개하기 위해 정말 비싼 돈을 주고요. 모든 걸 준비했고, 다 점검했고,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어요." "학교에서 그런 건 배운 적이 없어요." 역시 누구의 말인지 바로 알 수 있다. 면접관은 "당신 이력 말고, 당신"을 보여달라고 면접자를 닦달한다. 묻고 설교하고 요구하는 자에게 언제나 힘이 있다.
친숙한 장면이다.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2010)이 포착한 취업 준비생 한세진의 애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래를 불러야 했고 춤을 춰야 했다. 지방대 출신의 여성 취업 준비생에겐 묻는 것이 달랐다. "프랑스 백수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 부수고,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다 지 탓인 줄 알아요." 많은 공감을 받은 대사다. 사회 구조로 인한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하려고 애써야 하는 사회에서 세진은 게으를 수 있는 권리마저 빼앗겼다. 연이은 탈락으로 무력감에 사로잡힌 세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면접에서야 그의 말이 면접관에게 가 닿는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그런 걸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면접관에게 듣는 귀가 있으려면 좋은 물음이 먼저 있어야 한다.
영화와 달리 연극은 충격적으로 끝난다. 면접 상황을 극한으로 몰아가기 위해 과장이 심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종결할 마땅한 이야기가 무엇일지 상상하기 힘들기도 하다. 면접관은 노래, 춤, 옷 벗기, 유혹하기에 이어 마지막으로 권총 방아쇠를 당기도록 유도한다. 러시아 룰렛 게임이 면접자 앞에 기다리고 있다. 이전까지 면접관은 바로 요구하다가 이번에는 돌려서 말한다. 도전하라고 말할 뿐이다. 마지막 관문이라고, 이 문만 통과하면 취업이라고 속삭인다. 벌거벗은 면접자로는 부족했을까. 벌거벗은 삶과 노동보다 더한 막장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일까.
면접자가 담당할 업무는 '파워포인트'였다. 기껏 파워포인트라고 해선 곤란하다. 평생 고용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를 지나는 동안, 글로벌 자본주의가 유연하게 만든 노동은 저렴하다 못해 싸구려가 되었다. 이른바 '불쉿 잡'(데이비드 그레이버)이다. 이는 쓸모없고, 무의미하고, 허튼 일을 하는 일자리를 가리킨다. 그에 따르면, 이런 일은 다섯 가지를 배운다. '첫째, 타인의 직접 감독하에서 일하는 법. 둘째,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을 때도 일하는 척하는 법. 셋째, 아무리 유용하고 중요한 일이라도 실제로 즐기는 일에는 보수를 주지 않는다. 넷째, 유용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지만 즐기지 않는 일을 할 때 보수를 받는다. 다섯째, 적어도 대중을 상대하는 직업이라면, 즐기지 않는 업무를 수행하고 보수를 받을 때 업무를 즐기는 척해야 한다'. 싸구려가 된 노동으로는 정체성 구축과 인정이 불가능해 보인다.
시인 진은영은 시가 "빛나는 기요틴처럼 닫힌 면접장 문틈에" 있다고 '그러니까 시는'에서 노래했다. 단두대(기요틴)라니. 시인이 발견한 닫힌 면접장 문틈에, 빛나는 기요틴처럼 있는 진실이 이와 맞닿아 있으리라. 연극의 마지막 대사는 "이름이 뭐였지"다. 쓰고 버리는 물건에 이름이 있을 리 없다. 저렴하다 못해 이제 싸구려가 돼버린 우리의 삶이 문틈에 벌거벗은 채 있다.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