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아제한정책'을 경험한 60대 중반이상의 부모 세대는 졸업하면 쉽게 취직했고, 가장의 벌이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때 회사 직원은 미화직원까지도 모두 그 회사 사장으로부터 월급을 받는 정직원이었다. 1997년 IMF를 거치면서 노동유연성을 빌미로 비정규직이 생겼다. 근로계약을 한 회사와 업장이 달라지면서 업장에서 그들은 유령과 같은 처지가 됐다. 차별은 소외를 낳고 소외는 비관을 낳고 비관은 미래를 죽였다. 사회 전체에 퍼진 그 비관이 바로 저출산의 원인이고, 우리를 양극단으로 밀어넣는 원인이다.
노란봉투법은 바로 그 고리를 끊어내자는 작은 몸부림이었다. 적어도 근로 환경은, 그 근로를 주는 업장의 사장과 직접 교섭할 권리를 달라는 목소리였다. 하청노동자로 일하지만 나는 유령이 아니라고 인정해 달라는 절규였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 법이 "노사관계와 국민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이 너무 심각하기에 정부로서는 도저히 공포할 수 없었다"고 했다. 또 "헌법은 근로자의 기본권, 사용자의 재산권, 영업의 자유를 조화롭게 보장해 노사관계에서의 사회적 균형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 법은 그 균형을 부수고 있다"고 했다.
반대로 묻고 싶다. 헌법32조는 근로조건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수준일 것임을 요구하고 있다. 파견근로자의 근로조건은 존엄성을 보장받는 수준인가.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4명이 해당하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행복하다면 '내 한몸 지키기도 힘들어 후세는 못낳겠다'는 푸념이 나오겠나. 한국노총 지도부 출신 이정식 장관이 답해줬으면 좋겠다.
/권순정 정치2부(서울) 차장 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