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부인 이순자 姓 버무린
영화 '서울의봄' 관련 이심전심
우리네 지도층 聖人은 아니라도
일장춘몽 작취미성 깬 醒人 되길

경북 경주에도 회재 이언적이 1532년 지은 독락당이 있다. 보물 제413호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당시 별당과 정자는 학문을 연마하고 자신을 수양하는 장수(藏修),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며 다시 장수를 준비하는 유식(遊息)이 목표였다. 자연히 선비로서 절제된 품격과 주변 자연을 응축하는 자연인식이 바탕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현대의 명사는 별채에 동락당(同樂堂)이란 이름을 붙인다. 문득 궁금하다. 혹시 자음 접변에 따라 독락이 동락으로 들렸고, 자연스럽게 동고동락(同苦同樂)을 떠올린 것은 아닐까. 설마. 그보다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함께 한다는 뜻으로 지었을 것이다. 동고동락에서 끼리끼리 속성이 느껴진다면 연암이 독락을 넘어 강조한 중락(衆樂)은 여민락(與民樂)에 가깝다고 할까.
이 외에도 우리말 특성상 동음이의어가 많다. 전후 맥락을 모르면 전혀 다른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유머와 재치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춘향전의 한 대목. 이몽룡과 성춘향이 서로 통성명을 한 후 "이성지합 좋은 연분 평생 동락하여 보자"고 한다. 여기서 이성지합은 이씨와 성씨 만남(李成之合)이라는 뜻과 남녀간 결합(異性之合)의 중의적 표현이다. 뒤의 동락(同樂)이 언어유희에 기름칠인 셈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좌우명 대도무문(大道無門)은 대도 조세형에 이르러 대도무문(大盜無門)으로 재치를 더한다. 서울 우이동 도선사의 독경소리가 '우이독경'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이도 있다. 하지만 무운(武運)을 빈다는 말에 "왜 운이 없음(無運)을 비느냐"고 되묻고, 거듭 우승하는 연패(連覇)를 계속 지는 연패(連敗)와 구분하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고.
요즘 장안의 화제인 '서울의 봄'과 관련한 사자성어도 있다. 대표적인 게 '이심전심'이다. 오묘한 진리는 언어나 경전에 따르지 않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한다는 거다. 이를 전두환과 그의 부인 이순자를 빗대 이심전심(李心全心)으로 비틀었다. 차복전파(車覆全破)는 유명 명리학자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준 운수 풀이인데, 얼핏 자동차사고를 조심하라는 걸로 읽힌다. 하지만 10·26과 12·12를 거치며 차지철이 엎어지고 전두환이 판을 깨뜨리면서 세간의 찬탄을 불렀다.
교수신문이 올해 사자성어로 꼽은 '견리망의(見利忘義)'도 묘한 대목이 있다. 이로움을 보느라 의로움을 잊었다는 뜻인데, 지도층이 출세와 권력을 추구하면서 공적인 영역까지 사적 이익추구에 잠식당한 상황을 지적한 거다. 원전인 논어의 헌문편은 '견리사의(見利思義)'로 나온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성인(成人)에 대해 묻자 "눈 앞의 이로움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우면 목숨을 바치며, 오랜 약속일지라도 평생 잊지 않는다면 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성인이라면 마땅히 사사로운 이익에 앞서 의로움을 생각해야 하는데, 작금의 사회지도층은 의로움을 외면하거나 아예 내팽개쳤다는 교수들의 인식 아니겠나.
이 사자성어를 조금 비틀어 '견리망의(見利忘衣)'로 읽는 이도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란 안데르센 우화를 살짝 섞어 버무린 언어유희다. 각설하고 우리네 지도층에게 성인(聖人)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일장춘몽 작취미성에서 깨어난 성인(醒人)이었으면 좋겠다. 공자의 성인(成人)이면 더욱 좋겠고.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