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 '너의 죽음' 남달라
내면의 슬픔 육체적 고통으로 인지
이태원 참사 유족들 상처 치유 필요
시민분향소 철거 요구는 옳지 않아

장켈레비치의 이 견해는, 인간에게 죽음은 감각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전제 위에 성립된 것이며 그 까닭은 죽음은 일체의 감각이 사라진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인칭 죽음을 경험할 수 없는 까닭은 죽음이라는 조건 속에 놓이게 되면 경험의 주체인 '나'가 사라지기 때문이고, 삼인칭 죽음을 경험할 수 없는 까닭은 경험의 대상인 '그'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라면 이인칭 죽음이라 할지라도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경험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너'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자의 경험으로 접근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켈레비치가 이인칭 죽음을 통해 죽음을 감각할 수 있다고 한 말은 실은 우리가 관계 맺고 있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죽음의 고통과 슬픔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는 의미로 죽음 자체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인칭 죽음의 경우에도 죽음은 여전히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불가지의 영역에 머물러 있으며 이것이 살아 있는 자의 한계다. 그럼에도 이인칭 죽음은 죽음이라는 추상적 의미를 구체적인 감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우리가 죽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호주의 원주민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자기 머리를 돌로 찧어 피가 흐르게 한다. 그리고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린다. 머리에 난 상처가 아물면 마음의 상처도 나을 거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근대의 시선으로 보면 그저 야만적인 신체 폭력으로 치부될 법한 이들의 애도는 평생 따라다닐지도 모를 내면의 슬픔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궁극적으로 삶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내면의 슬픔이라는 추상적 감정을 육체적 고통이라는 구체적인 감각으로 외화(外化)함으로써 아물어 가는 상처를 벗 삼아 슬픔을 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호주 원주민들은 저런 애도 전통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호주 정부가 1910년부터 1970년대까지 원주민들의 자녀를 강제로 빼앗아 따로 교육하는 격리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찾지 못하도록 어디로 보내졌는지 비밀에 부쳐졌다. 교육과정에서 원주민 언어를 비롯한 전통적 삶의 양식은 완전히 배제되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교육이 끝난 뒤에도 가족과 만나지 못하게 차단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목적이 호주의 어두운 역사를 들추어내는 데 있지는 않다. 오히려 애도 행위를 두려워하거나 심지어 혐오하는 현상이 만연한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반성하기 위해서이다.
최근 서울시가 이태원 참사 유족들에게 서울시 광장에 설치된 시민 분향소를 철거하라고 요청했고 전주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분향소라는 공간은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유족들의 고통과 슬픔을 밖으로 드러내는 장소다. 호주의 원주민들이 이인칭 죽음 앞에서 머리에 상처를 내 내면의 슬픔을 밖으로 드러내 치유를 바란 것처럼, 시민 분향소는 한 사람의 슬픔을 한 사람 안에 가두지 않고 밖으로 드러냄으로써 고통을 함께 치유하자는 뜻에서 마련한 장소이다. 따라서 유족들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 불법 설치물이라는 형식적 법리를 내세워 분향소를 철거하라는 요구는 옳지 않다. 오히려 분향소를 존치하여 유족들의 상처가 하루라도 빨리 치유될 수 있도록 도와야 마땅하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