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내가 추천하는 인천책·(9)] 이재용 평론가 - 이영태 '인천 인문학 여행'
"새로움 알려면 이전 역사 알아야"
부평·계양 다룬 漢詩 골라 해설
2부 '현대시조 대가' 최성연 조명
삼국시대~오늘날 속도감있는 짧은글
"신작로, 오동 마차 우편, 전기 외등, 화륜선"(105쪽)뿐만 아니라 경인철도, 인천항, 월미도, 미두장 등으로 개화 이후의 인천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새로운 것임을 알려면 그 이전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에 더하여 "고전이 지혜를 발휘"할 수 있도록 "현재와 미래로 연계"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이영태·'인천고전문학의 현재적 의미와 문화정체성' 중에서).
하지만 아직 읽을 만한 '인천 고전문학 선집'이 없으니, 차선책으로 고전문학에 관한 책을 읽는 것으로 내 편협성을 자각하려 한다. 그래서 집어든 책이 이영태의 '인천 인문학 여행'이다.
이영태는 오랫동안 인천 고전문학을 다루어온 필자다. 2000년대 중반 공저자로 인천을 다루기 시작했고 2010년 '인천 고전문학의 이해'(다인아트)로 단독서 간행을 시작, 2014년 '인천 고전문학의 현재적 의미와 문화정체성'(인천학연구원), 같은 해 '옛지도와 함께하는 한시 여행-인천으로 가는 길'(채륜) 등을 지속적으로 발간하였다.
다소 딱딱한 학문적 형식을 지키면서도 자유로운 상상력에 기반한 참신한 해석이 대중적인 직설화법에 녹아들었다. 연륜이 쌓이면서 광범위한 레퍼런스에 기반한 전천후의 구성이 가능해졌다.
인천 소재를 중심으로 삼았지만 인천에 한정되지 않았고, 인문학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도록 대상을 고전문학에 국한하지 않았다. 고전문학을 포함하여 현대시조, 개화기 인천의 모습을 알려주는 역사적 사실과 문화적 풍습에 이르는 폭넓은 자료가 현재적 의미로 해석되었다.
1부는 외부자가 인천으로 들어와 살다 나가는 '여행'이다. 고려 중기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는 한시 중 부평이나 계양의 풍경과 삶을 다룬 작품을 골라 해설했다. 그런 후에 부평 경험을 긴 장편 한시로 남긴 김용의 시를 자세히 다루어 다시 '인천'에 방점을 찍는다.
2부에서는 인천에 살았던 현대시조의 대가 소안 최성연(1914~2000)을 다루었다. 인천 관련 시조를 먼저 다루고는, 그의 시를 그의 생애와 대조하며 시 속에서 거대한 역사적 배경을 추출해낸다. 1946년의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소식을 북한에서 발설하여 옥에 갇힌 경험에서부터 1986년 5·3 주안역 민주항쟁에 이르는 경험이 투병으로 일관한 삶의 외피 속에 핏빛으로 배어나온다.
2부까지 재미있게 읽은 탓인가. 3부는 조금 아쉽다. 연수구 설화의 연구방법론을 설화 분류와 전승소(傳乘素)라는 열쇳말로 간결하게 정리한 것까지도 좋았는데, 본래 글의 성격이 해석 위주여서 설화 자체의 내용은 따로 찾아 읽어야 한다. 다행히 연수구청 홈페이지에서 거의 찾아 읽을 수 있었다.
신문 칼럼을 모아놓은 4부에서 그간의 축적된 연구 역량이 드러난다. '인문학'이 빛나는 순간이다. 수로부인에서 인천의 하천에 이르기까지 고금이 소통하고 언어학과 역사, 문학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박람강기의 역량이 깊은 샘으로 콸콸 솟는다. 삼국 시대에서 개화기까지, 아니 노래 '테스 형'까지 언급하니 오늘날에 이르는 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짧은 글에서 속도감 있게 오간다.
한바탕 책을 읽고 보니 왠지 허무하다. 더 채우고 싶다. 다른 책을 읽어볼까 하다가 몇 자 못 읽고 내려놓으면서 엉뚱한 생각이 난다. '인천 고전문학 선집'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아니 좀 더 줄여서 '인천 한시 선집' 정도여도 좋다. 어쨌든 고전문학을 지역과 관련하여 알고 싶을 때 집어들 만한 종합본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선명해진다.
'인천 인문학 여행'은 지역 연구자이자 고전문학 연구자인 이영태의 오랜 여정이 꿋꿋하고 단단하게 여문 경험이 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현재까지의 작업을 기반으로 앞으로의 작업 또한 기대해보며, 이 책을 내 옆에 또 하나의 이웃으로 가만히 놓아본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