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듯 위헌·위법해도 제지할 방도 없어
총선을 일당 우위체제 만들 '왜곡된 인식'
기본적인 역할마저 포기한 모습 '비정상'
입법부인 국회는 법을 제·개정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그런데 이러한 입법부가 위헌과 위법을 관행처럼 반복해도 제지할 방법이 없다. 선거구 획정이 예비후보 등록일인 12일을 이미 넘긴 상태는 위헌·위법 상황을 의미하고 이는 총선 출마자들과 유권자의 참정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지난 21대 총선 당시에는 선거일을 불과 한달 남짓 남긴 2020년 3월6일에야 선거구 획정이 이뤄졌다. 17대 총선 때는 선거 37일전, 18대 47일, 19대 44일, 20대 42일을 각각 앞두고 선거구 획정을 마쳤다. 선거구가 확정되지 않으면 예비후보자들은 선거사무소를 어디에 마련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현역의원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도 출마자 정보에 대해 제한적으로 알 가능성이 커져서 선거의 정당성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지금의 의석 분포는 윤석열 정부 출범 전에 치러진 선거의 결과이지만 내년 총선은 윤 정부 출범 2년만에 치러지는 선거이기 때문에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부여될 수밖에 없는 선거다. 물론 이에 못지 않게 제1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다시 부각되는 상황이 여당 심판 못지 않게 야당견제론이 나올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
어떠한 선거 프레임이 되든지 총선 이후 여야 관계는 총선 전의 상황에서 나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21대 국회는 역대 어느 국회보다 여야 거대정당들의 적대의 정치가 극한에 이르고 있다. 민주화 이후에 증오와 대치가 일상화된 최악의 정당구도가 지속되고 있다. 선거구가 이미 위법 상태가 됐지만 선거구 획정만이라도 역대 국회보다 빨리 확정지음으로써 21대 국회의 마지막 위상이라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국회에 있다.
총선거가 선거승리를 위한 경쟁이 아니라 상대를 쓰러뜨림으로써 의회를 완전히 장악하여 사실상의 일당 우위 체제를 만들겠다는 왜곡된 의식이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정당체제가 타협과 토론을 통하여 의제를 만들어내고 이에 대해 정당간에 간극을 좁혀감으로써 정책과 법안에 관하여 합의를 도출해 내는 절차가 정치이자, 민주적 정당성을 창출해 나가는 기본이다. 그러나 다당제의 외피만 쓴 지금의 거대 양당정치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과정에 반하는 증오와 적대의 정치를 일상화하고 있다.
2020년 21대 총선거에서 거대 정당의 카르텔 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사회적 공론화가 이루어졌지만 여야 정당은 이를 교묘하게 포장하면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어내는 꼼수를 썼다. 여야가 공모함으로써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형해화시키고 선거 이후엔 여야 거대정당에 흡수됨으로써 선거제도의 취지를 완전히 왜곡했다.
선거가 4개월도 남지 않은 현재 여야는 공직선거법의 기본 방향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국회는 합의제 민주주의에 완전히 반하는 정치에 매몰되어 있다. 양당제를 기본으로 하는 대통령제가 얼마나 민주주의에 취약한지를 미국의 경우에서도 목도하고 있다. 22대 국회에서도 지금의 거대양당이 국회를 지배한다면 대한민국 국회는 예산안의 법정시한 통과와 선거법 개정과 같은 가장 중요한 일정은 물론 민생에 관련한 이슈와 법안을 생산하지 못하는 불임국회의 모습이 화석처럼 굳어질 수 있다.
현실정치를 감안하더라도 여야 정당이 총선과 공천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하는 것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예산안과 선거구 획정과 같은 기본적인 국회의 역할마저 포기하다시피하는 국회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의 적대적 양당제를 타파하고 실질적인 다당제의 합의제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