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은 K-푸드의 대표주자다. 연유가 있다. 레시피의 개방성, 포용성, 창의성이 으뜸인데다 가성비가 갑중의 갑이라서다. 쌀밥에 채소와 육류를 고명으로 얹어 참기름 한방울 떨어뜨리고 고추장에 비벼 먹는 요리 방식은 무궁무진한 변주가 가능하다. 한자명 골동반(骨董飯)에도 비빔밥의 덕목이 스며있다. 골동은 분류하기 힘든 옛날 물건을 통틀어 칭하는 명칭인데, 골동품의 그 골동이다. 특정한 요리로 분류하기 힘든 비빔밥의 미덕은 통합과 융합인데, 우리가 비빔밥을 즐기는 방식에서 잘 드러난다. 오방색 고명으로 수놓은 전통 골동반은 요리사의 내공이 담긴 예술 작품이다. 하지만 서민의 비빔밥은 그야말로 창작의 영역에서 찬란하게 가지를 뻗는다. 고명은 볶든 데치든 날것이든 상관없다. 꼭 넣어야 하고 빼야 하는 재료의 금기도 한계도 없다. 돌솥에 담아 혼자 즐겨도 되고 양푼에 넉넉히 담아 여럿이 수저로 퍼먹어도 된다. 접대용 고급 음식이기도 하고 농부들의 들밥이기도 하다.
재료를 뒤섞으면서도 각각의 맛을 유지하는 것이 비빔밥의 또 다른 미덕이다. 고추장에 벌겋게 물들었지만 고명 하나 하나가 본연의 맛과 식감을 유지한다. 현대 미국 문화를 샐러드 볼에 빗댄다. 이민자들의 고유한 문화를 용인하지 않는 폭력적인 멜팅 팟 이론보다는, 소스에 버무려도 각각의 재료가 정체성을 유지하는 샐러드 볼이 미국을 상징하기에 제격이란다. 우리 조상들이 오래 전에 비빔밥으로 깨달은 사회와 문화의 묘리다.
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이 11일 발표한 2023 트렌드 검색어 순위에서 비빔밥이 레시피 부문 1위를 차지했단다. 비빔밥의 덕목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비빔밥은 외국에서도 창작의 날개를 펼친다. 고명으로 쓸 채소와 육류가 나라마다 다르니 당연하다. 고수가 올라간 비빔밥에 고추장 대신 스리라차 소스를 얹은 비빔밥도 있다. 하지만 응용의 끝에 이르러 한계에 직면하면 원조를 찾고 원형에 귀의한다. 구글에서 비빔밥을 찾는 이유일 테다. 비빔밥 문화, 정신, 미덕에 견주어 한국 정치를 비판하는 글들이 지천에 널렸으로, 반복하면 진부하다. 그래도 지금 같지는 않았다. 예전 정치는 고명이 부족해도 비빔밥 맛이 났다. 지금은 국민을 대의하는 정치가 아니라 소수 당지도부를 대의하는 단품 정당들이 정쟁에 열중한다. 한국 정치는 맛이 없어도 더럽게 없다. 비빔밥 원조 국가의 수치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