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곳곳 주민들 남긴 일종의 '댓글' 취재"
정비된 대도시 비해 만석동 계단·집 다양
드로잉 15장 천장·벽·바닥 등 나눠 전시
엉뚱하게 생긴 '공 인간'이 하늘 높이 치솟다 내려오자 종이로 만들어진 몸뚱이가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나풀거린다. 우리 동네 익숙한 풍경에 '공 인간'이 오르내리는 영상을 전시장에서 보는 괭이부리말 주민들이 까르르 웃는다.
인천 동구 만석동 괭이부리마을에 있는 인천문화재단 우리미술관에서 레지던시 입주작가 결과 보고 전시 '우리의 높이'를 열고 있는 김용현 작가는 "괭이부리마을의 다양한 높이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우리미술관은 작가 개인에 초점을 더 맞추는 다른 예술가 레지던시와 달리, 지역과의 관계 맺기도 입주작가의 중요한 활동이다. 김용현 작가는 지난 3월부터 만석동에서 지내면서 마을을 걷고 주민을 만났다.
"카메라를 들고 마을 곳곳을 다니다 보니 과속 차량을 단속하는 사람, 인형을 만드는 사람, 혹은 영화 감독으로 주민들은 저를 바라봤습니다. 주말에도 조용한 동네예요. 소리도 별로 들리지 않고요. 그런 경험이 작품에 반영돼 있습니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그곳을 내가 같이 살면서 주민들이 남긴 일종의 '댓글' 같은 일상의 것들을 내가 취해 해석한 부분입니다."
전시장에 설치된 다채널 영상작품은 각각 '높이의 기억' '우리의 높이' '우리를 부르는 높이' '마땅한 높이'란 제목이 붙었다. 작품마다 크고 작은 '공 인간'이 떨어지거나 작가가 떨어뜨리는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주민들이 작품을 보며 웃는 건 우리 동네에서 만났던 작가가 우리 동네에서 작업한 결과가 익숙하면서도 동네 모습이 새롭게 다가와서일 것이다.
"대도시 건물들은 높이가 정해져 있지만, 이곳 만석동은 계단도 많고, 지형과 집들의 높이가 다 다르다는 점을 주목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궤적으로 만들어진 마을의 높이는 이곳 주민의 신체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또 다른 마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높이를 숫자로만 받아들이지만, 사실은 개개인의 기억을 토대로 높이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요. 이곳은 높이가 다양하다 보니 각각의 높이에서 어떤 기억들이 다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다양한 높이를 표현했습니다."
높이는 우리미술관 전시장에서도 찾을 수 있다. 김 작가는 드로잉 작품 15점을 전시장 천장 가까이, 벽면 중간, 바닥 등 곳곳에 높이를 달리해 전시했다. 드로잉 또한 '높이'를 소재로 했다. 드로잉은 영상 작품의 물리적 높이가 아닌 기분, 위신 같은 정서적 높이를 다뤘다. 인스타그램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등장하는 이른바 '짤'들을 참고했다.
김 작가는 "이곳을 떠나더라도 이 지역에 대한 남다른 기억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31일까지다.
글·사진/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