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바람따라…" 속좁은 푸념
둘째날 일부러 혼자 걷고 따를뿐
묻지도 않고 그들 걸음 존중하니
마음 편하고 비로소 보이기 시작

가장 먼저 일행을 맞이한 건 남도 음식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놀라고, 반찬 가짓수에 놀라고, 남도 음식 특유의 풍미에 한 번 더 놀란 생활인들이 탄성을 지르며 폭풍 흡입했다. 이어 낙안읍성으로 향했다. 낙안읍성의 성안 마을은 시간을 몇백 년 뒤로 돌려놓은 듯 고풍스러운 정취를 품고 있다. 성안 곳곳에 목화밭과 물레, 농장기, 판소리배움터, 대장금세트장 등 볼거리가 널려 있지만 읍성 경관의 백미는 성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둘레길 꼭대기다. 거기 올라서면 누구나 기념사진을 찍는다.
성안 마을을 둘러보고 성곽 둘레길을 따라 정문으로 돌아오면 얼추 1시간에서, 1시간 반은 걸린다. 어찌 된 일인가. 채 30분이 지나기도 전에 생활인 대부분이 성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절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아, 여행을 안 해 본 분들이구나. 사는 게 팍팍하니 사진 찍을 생각조차 안하는구나'.
아쉬움을 뒤로하고 순천만습지로 향했다. 그곳에서만큼은 마음을 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하면서. 갈대숲을 헤치며 걷다 보면 마음의 위안을 얻지 않을까, 도저한 갯벌과 붉은 석양을 호흡하다 보면 시름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마침 습지 초입에서부터 철새들이 공중 군무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번에도 예상은 빗나갔다. 어찌나 걸음걸이가 빠르던지 사진 몇 장 찍을 겨를도 없이 허무하게 습지 탐방이 마무리되었다. 와중에 혼자 감상에 젖어 먼 데 허공을 응시했다. 거기 지난했던 내 삶의 궤적이 오롯이 들어있다. 젊어 한때 나는 내가 바람인 줄 알았다. 쓰러져 깨지고 상처 입은 뒤에야 나는 바람이 아니라 그저 나약한 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풀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쓰러진다. 바람을 거역하는 풀은 생을 이어가지 못하고 꺾이고 죽는다. 나는 그렇게 죽고 또 죽어왔다.
늦은 밤 여남은 명이 둘러앉아 막걸릿잔을 기울였다. 하루 동안의 행로를 되짚는 시간이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생활인들 걸음걸이가 너무 빨라 당황스러웠고, 여행하면서도 쉬 마음을 열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옆에 앉아있던 분이 조용히 내 말을 받았다.
"오늘 바람이 참 좋았어요. 그분들 그저 바람을 따라 걸었을 거예요."
부끄러웠다. 옹색했고, 얕았다. 편견을 벗지 못했음을 자인한 꼴이었다. 여행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자의 속 좁은 푸념이었다. 일행이 많아도 여행은 결국 혼자 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옆에서 독려해본들 마음을 열고 말고는 순전히 본인의 의지에 달린 일이다. 바람이 좋았다니, 그저 바람을 따라 걸었을 것이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 건가.
노숙인시설과 자활지원센터, 교도소 등에서 강의한 지 올해로 20년째다. 때로 힘들고 괴롭고 슬프고 속상하고 화가 났다. 더러는 즐거웠고 뿌듯했다. 그 모든 감정은 그저 나의 감상이었을 뿐이다. 이해하고 공감하고 공유된 감정이 아니었다. 내 맘대로 슬펐고, 저 혼자 뿌듯해했을 뿐이다.
둘째날, 마음을 고쳐먹었다. 와온해변에선 부러 혼자 걸었다. 그림책도서관에선 되도록 뒤에 서서 따라다녔다. 누구에게도 이번 여행이 어떠냐고 묻지 않았고, 표정을 살피지 않았고, 사진 찍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개별 여행자로서 그들의 걸음걸이를 존중했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고,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바람 따라 걷는 그들 마음속에 저마다의 우주가 들어 있었다. 바람이 좋았다는, 그 단순한 말속에 이번 여행에 대한 소회가 다 담겨 있었다.
/최준영 사단법인 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