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민들이 그야말로 죽기 일보직전이다. 고금리 시대에 은행 종 노릇도 서러운데 고물가로 밥상도 나날이 초라해진다. 나라가 인플레이션 경제 사이클에 갇히자, 고통은 온전히 서민이 떠안았다. 인플레이션은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이다. 고금리, 고물가의 원천이다. 인플레이션의 1차 원인은 통화량 팽창이지만, 자연의 간섭과 인간의 욕심이 결합하면 재앙이 된다. '~ 플레이션'으로 수많은 조어가 탄생하는 배경이다.
국제 곡물가격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애그플레이션(agriculture+inflation)이다. 이상기후·전염병 등 다양한 요인으로 급등한 곡물가격은 물가인상 도미노의 첫 번째 패다. 슈가플레이션, 에그(egg)플레이션, 밀크플레이션으로 파생돼 급기야 직장인에게 런치플레이션으로 현실이 된다. 자연히 진정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늘 그렇듯 인간이 문제다. 인플레이션이 인간의 욕심과 버무려지면 최악이 된다. 최근 유행하는 슈링크플레이션은 기업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상품의 용량과 재료의 함량을 줄여(shrink) 구매자의 화폐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다. 세계 곳곳에서 기업들이 이런 속임수로 인플레이션을 부추기자 각국 정부가 규제에 나섰다.
한국소비자원이 13일 슈링크플레이션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1년간 9개 품목 37개 상품이 원재료의 용량과 함량을 줄였단다. 이상하긴 했다. 늘 먹던 주스 맛이 변하고, 소시지 봉지가 가볍게 느껴졌던 이유가 있었다. 기업들은 원재료 인플레이션 때문이라 강변하지만, 원재료 가격 인하 때는 시치미를 뗐다. 가소로운 변명이다.
따지고 보면 자연의 섭리 빼고는 모든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인간이다. 권력자들은 앞뒤 없이 돈을 풀어 민심을 사고, 기업들은 그 틈바구니에서 이익을 실현하느라 혈안이다. 극단적인 양극화 사회에서 대기업과 은행 임직원은 돈잔치를 벌이고 비정규직과 자영업자들은 노동을 갈아 넣는다. 인플레이션 장벽 사이에서 상생은 공염불이다. 선거철이니 선심성 표플레이션이 꿈틀댈 테다. 인간의 욕심과 욕망을 먹고 자라는 인플레이션이다. 수많은 '~플레이션'의 으뜸은 '휴먼플레이션'이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