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틈 시리즈' 10권 완결
'세기의 애인' 취업난 시달리는 현재 대한민국 청년들 연상
'금단의 유역' 1930년대 인천 사진 담긴 애욕의 멜로드라마
■ 세기의 애인(한국근대대중문학총서 틈 09)┃엄흥섭 지음. 홍시커뮤니케이션 펴냄. 300쪽. 1만4천500원
■ 금단의 유역(한국근대대중문학총서 틈 10)┃정비석 지음. 홍시커뮤니케이션 펴냄. 228쪽. 1만4천500원
한국 근대 대중문학 총서 '틈'은 본격문학 혹은 순문학 중심의 근대문학사에서 주목받지 않은 대중문학 가운데 오늘날 독자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작품을 선정해 다시 출간한 기획이다.
'틈' 시리즈는 교과서에 실린 김유정 소설 '동백꽃'(1938년)처럼 순문학이나 본격 문학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통속적 내용을 다룬 소설이 대부분이다. 탐정소설, 소년소설, 연애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잘 포장된 채로 보여졌던 한국 근대의 포장을 벗긴 속살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에 출간한 1930년대 소설 2권도 '틈' 시리즈의 성격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좌익 계열 문학단체에서 활동했던 엄흥섭이 "내가 쓴 통속물 가운데 하나"라고 지칭한 '세기의 애인'은 당시 명문대에 다니는 기혼 남성 김종만이 이른바 신여성들을 만나는 일종의 연애소설이다.
대전역에서 경성역까지 4시간 동안 향하는 기차 안에서 김종만이 여성 주인공 손보라를 처음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1~3장은 남녀가 연애 감정을 느끼며 긴장이 흐르는 상태를 요즘 신조어로 표현하는 '썸타는 순간'을 지금 연애 못지않게 표현했다.
명문대 학생이면서도 취업난에 시달리는 김종만은 현재 대한민국 청년을 연상케 한다. 1920~30년대 미국 대공황발(發) 글로벌 경기 침체의 반영이기도 하다. 당시 환락의 공간이었던 월미도 조탕(潮湯)은 손보라가 직장 대표에게 끔찍한 일을 당하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세기의 애인' 해설을 쓴 김미연 성균관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특수한 개인이 아니라 시대가 출현시킨 인물 군상의 면모를 부각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식민지 조선의 인텔리 청년이 겪는 내외적 고민과 근대적 사회에서 등장한 새로운 여성 인물형을 여럿 제시한 데에서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설 '자유부인'(1954년)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정비석의 숨은 명작 '금단의 유역'은 아내와 사별한 70대 노(老)화백과 청년 제자 최승조, 이들이 그리는 그림 모델 김순경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딘가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여기에 노화백의 외동딸과 최승조, 김순경의 오빠 김순환, 신문기자 조창건의 관계까지 얽히고설켜 애욕의 멜로드라마가 완성된다. 이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30년대 서울과 인천 시내 풍경을 담은 사진, 사료가 같이 실려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한국근대문학관은 발간사에서 "한반도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언어공동체이면서 독서공동체"라며 "우리 독서공동체가 단순하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해 한국 근대 대중문학 총서를 기획했다"고 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