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서는 글자를 누락시켰거나 악의적인 장난 또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풍자 등을 뜻한다. 낙서/낙서화의 전통은 유구하다. 구석기 시대의 알타미라와 라스코 동굴의 벽화, 그리고 우리의 신석기 시대 유산인 울산의 반구대암각화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낙서는 아이들의 치기 어린 장난으로 존재하기도 하고 사회의 부조리와 권력의 불의를 비판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낙서가 현대 예술의 장르로 주목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피티(graffiti)가 대표적이다. 영국 출신의 익명의 예술가로 알려진 뱅크시(Banksy)는 대표적인 그래피티 화가다. 장소와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뱅크시는 도발적인 작품들로 인해 게릴라 아티스트, 아트 테러리스트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진짜 이름과 얼굴 등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 뱅크시는 "이 세계의 거대한 범죄는 규율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규율을 따르는 것에 있다"고 설파한다. 가령 명령에 따라 폭탄을 투하하거나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군인들, 나아가 권력의 부당한 지시를 따르거나 눈을 감는 공직자나 언론도 뱅크시가 보기에는 규율을 따르는 범죄다. 물론 장소를 가리지 않는 그의 도발적인 낙서 그림을 두고 예술인지 범죄인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뱅크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사회·환경·자본주의·반전 등 다양한 주제로 줄곧 세상을 풍자하고 비판해왔다.
지난 16일 우리의 대표적인 문화유산 경복궁 담장이 난데없이 스프레이 테러를 당했다. 이는 그래피티는 고사하고, 낙서의 축에도 들지 못하는 파렴치한 범죄다. 경복궁은 창덕궁과 함께 조선 왕조를 대표하는 궁궐 즉 법궁(法宮)이다. 경복궁은 온갖 수난을 다 겪어왔다. 임진왜란 때는 분노한 백성들에 의해 대부분의 전각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마구잡이로 훼손되어 1926년 총독부 청사 건립을 포함하여 1915년 물산공진회, 1923년 조선공진회, 1929년 조선박람회 행사장으로 사용됐다. 여기에 근정전 용상이 일본 순직 경찰관 초혼제를 지내는 제단으로 쓰이기도 하고 정화조가 설치되는 등의 만행이 자행됐다. 이 같은 아픈 수난의 역사를 지닌 경복궁이기에 이번 경복궁 담장 스프레이 범죄가 더더욱 국민적 공분을 사는 것이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