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복지 등 좌파적실험 성공 이유
과거 신자유주의 지구화 물결 덕분
30년 넘게 자리잡은 국내 정치사회
레드 웨이브 같은 새변화 가로막아
어떤 정권이 됐든 유제들 너무 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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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출범한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현정권에 대해 온갖 원성이 드높다. 시골의 노인들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온갖 명목으로 뿌리던 포퓰리즘적 돈잔치가 사라진 데 대해 현정부의 무관심과 '싸가지 없음'을 비난한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헬리콥터 정부의 지원에 흐뭇해 하던 중소기업들은 국제경기의 하락과 고금리에 의해 벌어진 곤란을 현정부의 무능 탓으로 돌린다. 협치의 이름 아래 근거없는 지원을 받던 이른바 시민단체들은 국가의 일원으로서 지내다 쫓겨난 불만을 정권 출범 초부터 '대통령 탄핵'으로 되갚으려 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를 사적 패당 정치로 무너뜨린 야당정치세력은 의회 다수의 힘을 동원하여 그들에 대한 사법 적용을 정치적 탄압으로 몰아가면서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 이 모든 양상들은 좌파 포퓰리즘과 능력을 넘어선 과잉의 복지국가, 그리고 자유시장 규제의 국가주의 등의 익숙했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대적 유제로 보인다.

돌이켜 보면, 한동안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물결이 세계를 뒤덮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실주의적 경제정책을 포함하여 불가피한 대학 개혁정책마저 신자유주의 비판의 화살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WTO 각료회의, World Bank, IMF 등에 대한 반세계화시위와 세계사회포럼 등이 세계시민사회의 조직된 저항이었다. 이른바 블루웨이브는 좌파 포퓰리즘적 정권의 득세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화가 저개발국의 저성장과 빈곤을 낳는다고 보기 어렵고, 닫힌 국가주의는 선택 가능한 대안이 아니었다. 특히 한국의 현실은 세계적 이념동원과 조응하지 않았다. 한국은 세계화와 세계무역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나라였고, 성장할수록 세계화로부터 이탈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한국의 좌파적 실험은 그러한 세계화의 혜택 속에서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최근에는 세계화를 주도했던 나라에서 반세계화의 흐름, 이른바 글로벌 보수화 조류, 즉 레드웨이브가 나타나고 있다. 즉, 보수주의가 국가주의의 외양을 띠면서 세계적인 트렌드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 트럼프의 집권과 재부상, 영국의 브렉시트,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연합의 부상, 아르헨티나에서 극우 자유지상주의 성향 자유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 등이다. 한국의 지난 대선 결과도 세계화의 붕괴와 새로운 체제 경쟁의 등장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국가들이 보수적 국가주의를 선택할 수 없다. 한국의 자본주의적 발전과정 자체가 세계화에 의해서 부양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화된 경제의 중위 파트너로서 자리잡아온 한국경제는 비좁은 내수시장, 상대적으로 낮은 기술 수준, 작은 자본규모 등으로 인해 세계화 속의 역할을 벗어나서는 성장하기도 생존하기도 어렵다.

요컨대 한국은 세계적인 경제관계, 즉 자유시장적 세계경제에 의해서 국내의 경제가 크게 요동칠 수 있는 나라이다. 또한 그러한 경제적인 네트워크는 정치군사적인 네트워크와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외양상 현재 한국의 보수정권은 그러한 네트워크에서 이탈하지 않고 만들어진 체제라고 볼 수 있다. 과거의 정권이 이러한 네트워크를 벗어나 새로운 국제관계망을 구성하려다 한국의 경제와 정치군사적 전망을 매우 불투명하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설사 이러한 국제적인 관계망에 부응하는 정권이 등장했다고 할지라도 30년 이상 형성된 국내의 정치사회관계는 새로운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국가의 경제적 생산력에 의거하여 결정되는 사회복지 수준은 이미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고 제도화되어서 이를 흔들기는 대단히 어렵다. 민주화의 과정에서 이미 활성화된 시민사회와 노동세력은 한국의 세계적 분업구조 내 역할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쉽게 재구성할 수 없다. 포퓰리즘적 정권에 의해서 이미 정착되어온 사회관계와 사회의식은 설사 보수정권이 출범한 후에도 거대한 저항의 흐름만 형성할 뿐 한국사회의 현재를 인식하지도 미래를 준비하지도 못한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그 정권이 보수적 자유주의 정권이든, 좌파 국가주의정권이든 이미 어찌할 수 없는 과거의 유제들이 너무도 공고하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