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가르침 따라 우리말·글로
평생 익숙한 아름다운 동시 지어
독자는 어린이 보다 '어린이였던'
소중했던 기억 일깨워준 사람들
어릴적 순간 떠올린 중요한 존재

유성호_-_수요광장.jpg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지난 16일 부천에서 목일신 문학심포지엄이 열렸다. 제5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시상식도 함께 거행되었는데, 비교적 규모를 갖춘 학술대회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필자도 그 자리에 참석하여 일제강점기의 중요한 아동문학가였던 목일신 선생 탄생 110주년을 함께하였다. 이러한 행사를 펼칠 수 있었던 이면에는 그동안 선생의 문학적 유산을 집성하고 알려온 분들의 숨은 노고가 컸다. 목일신문화재단의 양재수 이사장, 시인의 따님 목민정 선생, 그리고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장 고경숙 시인 등이 그분들이다. 은성(隱星) 목일신 선생이 그야말로 '숨은 별'이었다면, 이분들은 스스로 밤하늘이 되어 그 별이 지상으로 빛을 뿌리게끔 해주었던 것이다.

목일신 선생은 1913년 전남 고흥에서 독립운동가 목흥석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광주학생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옥고를 치른 바 있고, 생애를 통틀어 400여 편의 동시와 수필 등을 우리 문학사에 남겼다. 하지만 그분은 오랫동안 문학사의 '숨은 별'이었다. 그러다가 탄생 100주년에 맞추어 나온 '목일신 전집'(2013)과 동시전집 '산시내'(2021)가 그동안 한국 아동문학사에서 놓치고 온 목일신 동시의 시간을 회복해주었다. 그 안의 보석 하나를 꺼내보자. '송이송이 눈송이 하얀 꽃송이/하늘에서 내려온 매화 꽃송이//나풀나풀 춤추며 내려와서는/마른 나뭇가지에 피는 꽃송이//송이송이 눈송이 은빛 꽃송이/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꽃송이//머나먼 길 오느라 고단하여서/나무숲에 내려와 쉬는 꽃송이'.('눈송이') 이 작품에서 선생은 지상으로 쏟아지는 눈송이들을 천진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마른 나뭇가지에 피는 꽃송이는 메마른 겨울을 환하게 되살려놓는 마법을 건넨다. 은빛 꽃송이는 하늘에서 오래고도 고된 길을 걸어온 나그네가 된다. 아름답고 애틋하고 그만큼 기억에 오래 남는다.

다음은 목일신의 대표작이다. '찌르릉 찌르릉 비켜나셔요/자전거가 갑니다 찌르르르릉/저기 가는 저 영감 꼬부랑 영감/어물어물하다가는 큰일 납니다//찌르릉 찌르릉 비켜나셔요/자전거가 갑니다 찌르르르릉/오블랑 꼬블랑 고개를 넘어/비탈길을 스르륵 지나갑니다//찌르릉 찌르릉 이 자전거는/울 아버지 사 오신 자전거라오/머나먼 시골길을 돌아오실 때/간들간들 타고 오는 자전거라오'.('자전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 작품은 그가 열세 살 때인 초등학생 시절에 착상하여 썼다고 한다. 아버지가 타시던 자전거를 소재로 하였다. 그만큼 소년 목일신의 조숙함이 오롯하다. 또 그가 남긴 이런 노래도 익숙하지 않은가. '넓고 넓은 밤하늘엔/누가 누가 잠자나/하늘나라 아기별이/깜빡깜빡 잠자지//깊고 깊은 숲속에선/누가 누가 잠자나/산새들새 모여 앉아/꼬박꼬박 잠자지//포근포근 엄마 품엔/누가 누가 잠자나/우리 아기 예쁜 아기/쌔근쌔근 잠자지'.('누가 누가 잠자나')

목일신 선생은 될 수 있는 대로 우리말로 글을 써보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말과 글로 평생 아름다운 동시를 썼다. 해방후 그가 '새 나라의 동무는/우리말과 우리글'('새 동무')이라고 노래한 것도 우리말을 자유롭게 쓸 수 없던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그의 우리말 사랑은 동시라는 매우 적절한 표현 형식을 얻어온 셈이다.

동시를 어린이만을 위해 쓴 시라고 말할 수는 없다. 동시의 독자는 '어린이'보다 '어린이였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그들은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선명하고도 소중하게 가진 이들을 말한다. 그들의 경험과 기억 속에 깃들인 어린 시절은 아름답고 애틋하다. 그 기억을 일깨워주고 다시 경험하게 하고 심지어는 어린이의 눈을 순간적으로 회복해 준다는 것은 중요한 동시의 존재론이다. 그래서 동시는 어린이의 문학을 넘어, 어린이였던 이들의 문학이기도 하다. 그날 이미 어른이 된 청중들이 감동을 받은 것도 이러한 동시의 성격에 말미암은 것일 터이다. 앞으로 목일신의 맑고 아름다운 동시가 더욱 빛나는 별로 우뚝하기를 소망해본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