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국경세 이중규제 제기에 EU 묵묵부답
이산화탄소 배출규제 세계적 움직임 강화
기후위기시대 '수출한국 게걸음' 낭패 우려
화석연료 사용억제에 가장 적극적인 곳이 유럽연합(EU)이다. EU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준비에 돌입한 지 2개월이 지났다. 온실가스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EU 회원국들에 수출할 경우 해당 제품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에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인데 2021년 7월에 EU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990년의 55%로 낮추기로 하고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업종을 우선 적용대상으로 정했다. 2023년 10월부터 2025년까지 준비기간을 거쳐 2026년부터 탄소국경세를 부과한다.
수출국 입장에서는 또 다른 무역장벽으로 '유럽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불린다. 탄소국경세에 따른 한국의 관련산업 타격이 불가피하다. 2021년 7월 한국은행은 EU가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면 한국의 수출은 연간 약 0.5%(32억달러, 약 8조1천224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9월 국회미래연구원은 2030년 기준 우리나라 탄소국경세 부담액이 8조2천456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전환기(지난 10월∼2025년) 동안에는 철강, 비료, 전기, 시멘트 등을 EU 역내로 수출할 때 페널티가 없지만 대신 탄소 배출량을 EU에 통보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달 27일 경인일보가 인천시내 해당업종의 일부 수출 중소기업들을 확인한 결과는 실망이었다. 탄소중립 경영에 필요한 평균투자비가 최소 수억원 이상 인데다 자체적으로 탄소배출량을 측정할 능력도 없어 이를 전문 업체에 의뢰하면 경우에 따라 건당 수백만원이 소요되는 것이다. 자금과 인력이 풍부한 대기업들에겐 별 문제 없겠지만 중소기업들은 부담스럽다.
국내 기업들의 중복과세 우려는 설상가상이다. 1년 후부터 해당 품목을 EU에 수출하면 탄소국경세를 납부해야 하는데 국내 기업들은 2015년부터 시행 중인 국내 배출권거래제(K-ETS)의 적용을 받아 탄소세를 부담중인 것이다. K-ETS는 일정 규모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장에 탄소배출권을 할당하고, 배출권 매매를 허용하는 제도이다. 탄소배출 허용치를 초과하는 업체들은 한국거래소에서 필요한 만큼 구입하도록 한 것이다.
2021년 7월 산업통상자원부는 EU에 탄소국경세는 이중규제라며 적용제외를 주장했지만 EU는 묵묵부답이다. 금년 5월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탄소국경조정제도 문제를 논의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EU는 기업배출 온실가스의 57%에 세금을 물릴 예정이나 한국은 10%를 유상할당하면서도 그마저도 잘 안 지키고 있다. EU가 우리의 제의를 수락할 리 만무하다.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규제 움직임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 미국 바이든정부는 석유화학·철강 등 12개 탄소집약 제품에 대해 t당 55달러의 온실가스 배출 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청정경쟁법' 제정을 준비 중이며 세계 최대 탄소배출국 오명을 쓰고 있는 중국도 온실가스 저감에 착수했다. 2020년 9월22일 시진핑 주석은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2030년 탄소 피크(peak), 2060년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하며 중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공식 선언했다. 녹색제조 확대 및 순환경제 추진 등이 핵심이다. 탄소중립이 기후위기시대의 뉴노멀로 자리매김하는 등 글로벌경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수출한국의 게걸음 행보가 낭패를 부를 수도 있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