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이상한 아이야" 라고 말안해
특수학급 다니는 딸 친구 준규를
연민했는지 키링선물후 마구 변명
난 더 잘크려 다시 한번 책 펼쳤다


준규는 딸아이 반 친구인데, 인기가 아주 많다. 딸의 말을 빌리자면, 반 아이들은 대부분 준규와 짝을 하고 싶어한단다. 아홉 살이면 남자아이들이 한참 개구쟁이 짓을 할 때인데 준규는 그와 달리 조용하고 잘 웃는 아이인 데다 색연필도 잘 빌려주고 지우개도 잘 빌려주기 때문이란다. 딸아이도 준규랑 짝이 되고 싶어하지만 제비뽑기를 하다 보니 그게 늘 실패다. 다만 단점도 있단다. 준규는 오전에는 같은 반에서 공부하지만 오후가 되면 특수학급으로 간다. 그래서 준규와 짝이 되면 오후에는 좀 심심해진단다.
놀이터에서 만난 준규 아빠는 무척 예의바른 분이었다. 그리고 다정한 분이었다. 미끄럼틀을 잘 오르지 못하고 아래에서만 맴맴 도는 준규에게만 눈을 두어도 바쁠 판국에 이리저리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는 우리 딸에게 계속 소리쳤다. "와아, 너 진짜 멋지다! 정말 용감한데? 아저씨는 너처럼 날랜 아이를 처음 봐!" 그 마음이 뭔지 알 것도 같았다. 우리 준규와 놀아줘서 고마워, 그것이었을지도 몰랐다.
아홉 살 내 딸과 반 아이들은 아직 모른다. 준규 아빠의 조마조마함을. 열한 살이 되고, 열두 살이 되면 준규는 '나랑' 조금 달라 하던 마음이 준규는 '우리랑' 달라가 되고 언젠가는 준규는 '이상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준규 아빠의 그 조마조마함을.
딸아이는 며칠 전 책 한 권을 읽었다. '뻔뻔한 회장 김건우'라는 동화책이다. 책 속 건우는 좀 특별한 아이다. 굳이 말하자면 자폐인인데, 이건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화법이다. 책을 다 읽은 아이는 나에게 "엄마, 건우는 좀 이상한 아이야"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 책이 얼마나 웃기고 재미난 지에 대해서만 나에게 떠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이는 건우의 그대로를 건우로 본다. 건우는 그냥 건우인 것이다. '장애'에 관한 이야기면서도 '장애'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 책. 다르다는 게 뭐 어때서? 그렇게 말하는 책.
나는 교육의 힘을 믿는 편이다. 성희롱, 성추행 같은 단어가 뭔지도 몰랐던 시절에, 있었어도 아무 힘이 없던 시절에 나는 대학을 다니고 직장을 다녔다. 격렬한 저항과 진통이 있었으나, 그리고 아직은 만족스럽지 않으나, 분명 그 시절과 지금은 다르다. '미투'는 교육의 과정이었다. 그 시기를 겪으며 우리는 분명 달라졌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도 우리는 달라졌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면서도 우리는 달라졌다. 자폐인을 보는 시선, 정신질환을 보는 시선, 우리는 많이 달라졌다. 달라지는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아이를 놀이터에서 데리고 들어오며 나는 가방을 뒤적였다. 새로 산 귀여운 키링 하나가 있었고, 나는 그걸 준규에게 선물했다. 키링을 받아든 준규가 웃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딸이 물었다. "엄마, 그거 왜 준규한테 줬어?", "그냥, 가방 안에 있어서." 그렇게 대답했는데 순간 마음에서 철컹, 소리가 났다. 아, 다르다는 게 뭐가 어때서 라고 생각했다지만 어쩌면 그게 아니었을 수 있겠구나. 여느 친구들이라면 그저 잘 가, 인사하고 말았을 것을, 어쩌면 나는 준규를, 준규 아빠를 연민했던 거였을 수 있겠구나. 나는 딸아이에게 마구 변명했다. 엄마가 말이야, 마침 키링을 샀는데 별로 마음에 안 들더라고, 그래서 그냥 준규한테 준 거야, 진짜 별로였거든. 나도 크려면 멀었다. 더 잘 커보려고, 집에 와서 '뻔뻔한 회장 김건우'를 다시 한 번 펼쳐 들었다. 한 줄 한 줄 세심하게 또 읽어봐야지.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