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점 1979' 의미… 12·12 쿠데타 해
야당대표 곁에 잦은 죽음 등 의문점
매스컴·언론으로 보는 일부의 진실
환각의 세상,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서울의 봄'이 시작되기 전에 영화에 나오는 '12·12 군사 쿠데타'가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전두광' 보안사령관이 국군 지휘권을 잡아채는 일대 사건이었다. 내가 대학생이 된 것은 1984년이었다. 1985년 봄이었는지, 가을이었는지, 연극 워크숍을 마치고 사회에 나간 선배들과 함께 2박3일 술집 순례를 했다. 종로소방서 뒤 서울 토박이 선배 집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통금이 시작된 자정 넘어 시간에 바깥에 탱크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귀를 쫑긋 세우고 바깥 동정에 주의를 집중했다. 한참을 소란스럽더니 다시 세상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한 선배가 "또 쿠데타가 난 거 아냐?"라고 했다. 한 이불 속에 다리들을 밀어넣은 채 긴장하고 있던 우리는 다 같이 웃었다. 그 무렵, 1983년에서 1984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텔레비전 방송들은 학원가 용공 사태며, 노동계 좌익 침투를 주제로 일제히 특집을 내보냈다. 대학에 가면 지하 서클들이 거미줄 치듯이 쳐 있다, 청바지 입은 여자 선배, 잘 해주는 남자 선배를 조심하라고 했다. 싸늘한 밤길은 주점 '1979'로 이어져 있었다. 지하 계단을 통해 내려가자 주점 안에는 캐럴 송이 흐르고 젊은이들, 나이 든 사람들이 이리저리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어째서 술집 이름이 하필 '1979'인 걸까. 1979년은 바로 그 '12·12 군사 쿠데타'의 해였다.
시대의 진실은 정말로 제때 알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 뉴스는 갑작스러운 '고승'의 입적 소식을 전했다. 이 스님은 '자화장'의 '소신공양'으로 모든 종도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노라고 했다. 이것이 이 종단의 공식적인 의견이었다. 이 알쏭달쏭 알 듯 모를 듯한 공식 메시지 앞에서 나는 도대체 어떤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각 마음속에서 의심이 일었다. 그러나 이 의심은 결코 제때 해소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종단에서 그렇다 선언하고 다비식을 치렀으니 아무도 이 사건을 더 깊이 들추어내면 안 되었다. 그러나 어디 이 스님의 입적 '사건'뿐이랴. 지난 정부 아래서도 노동운동을 오래 한 경력의 국회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했고, 서울시의 시장님도 숙정문인가 하는 쪽으로 올라가 세상을 등졌다고 했다. 지금 야당 대표의 주변에서는 어쩌면 그렇게 죽음들이 흔한지 이렇게 잦은 우연도 흔치 않을 것이다.
우리가 왜 사는지 어떤 세상을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어들 한다. 짧은 인생을 살다 가면서 베일에 단단히 감싸인 세상의 저편은 전혀 건너보지 못한 채 이편의 환상 속을 헤대다닐 뿐이다. 세상이 이렇다고 하면 이런 것이고 저렇다고 하면 저런 것이다. 정치인들도, 매스컴도, 언론도 다들 비밀을 잔뜩 움켜쥐고 '용용 죽겠지'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우리들은 그저 환각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장면들을 지켜볼 뿐이다.
그래도 역사는 진실을 감출 수 없다고도 하고 끝내 진실은 승리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지난 번에 정부가 바뀌고 나서 우리는 바다에서 일어난 참혹한 사태의 진실에 한 발자국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었던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냐? 하고 생각한다. 세상은 환각과 허위의 드라마를 방영하고 우리는 그 드라마에 눈과 귀와 넋을 빼앗길 뿐이다. 역사 속에서는 늘 그러했던 것 같다. 단 한 줌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진짜 진실이라 할 만한 것을 얻어갈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인가? 본래 진실이니 진리라는 것이 다 헛것일 뿐이라는 불법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인가?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