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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의 '모비딕'(1851)은 미국의 정신과 본질을 대변하는 미국문학의 전형이다.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간과 고래의 치열한 대결 속에서 인생의 참다운 목표와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걸작이다. 한때 '백경(白鯨)'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권장됐던 이 장편소설은 단순한 해양모험소설이 아니라 수많은 상징과 은유를 품은 다층적 작품이다.

멜빌 생존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다가 1920년대 이후 그 가치가 재발견되고 높은 평가를 받으며 단숨에 미국문학의 정전이 됐다. 그러면 '모비딕'의 어떤 점이 문학 권력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인가. 하나는 청교도인들이 세운 나라 미국의 기독교 정신을 잘 보여준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포경선 피쿼드호와 에이허브 선장을 포함한 선원들이 대변하는 상징성 때문이다.

카뮈가 가장 사랑했던 소설 '모비딕'은 기독교 문학이다. '모비딕'의 기독교 모티프는 고래뱃속에서 살아 돌아온 '요나서' 제2장의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며, 이는 카를로 콜로디의 동화 '피노키오'에서도 그대로 등장한다. 또 작품의 화자이자 관찰자인 이스마엘은 구약성경 아브라함과 그의 여종 하갈 사이에서 태어난 그 이스마엘과 같고, 선장 에이허브와 엘리야 등 모두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쫓겨난 자, 떠난 자란 뜻을 지닌 이스마엘은 베두인, 아랍 민족의 조상이다.

'모비 딕'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적한대로 작살잡이 퀴퀘그의 검고 칙칙한 피부와 백인 선원의 선명하고 밝은 피부색의 대비에서 보듯 서구와 비서구의 불평등한 이분법적 구도가 재현되고 있으며, 피쿼드호의 30명의 선원은 남북전쟁(1861~65) 이전 미국의 30개주를 상징한다. 백인들의 우월적 지위를 보여줄 뿐 아니라 정복의 대상인 자연과 싸워 세계를 개척하는 미국의 자본주의 정신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한동훈 전 장관이 고교생에게 선물했다는 '모비딕'은 이처럼 복잡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보수 진영의 편애(偏愛)와 띄우기에 새 정치를 희구하는 국민적 열망의 합작품이 지금의 한동훈 현상의 본질인데, 한 전 장관이 이런 작품의 함의를 알고 선물한 것인지 궁금하다. 국민적 주목을 받는 정치리더는 무엇이든 전후좌우를 모두 살피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