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을 가리지 않고 모성과 부성은 강력하다. 자연 다큐멘터리에는 새끼를 위해 희생하는 수많은 동물들이 등장한다. 사자나 표범과 같은 대형 육식동물의 먹이인 초식동물들도 새끼가 먹잇감이 되면 포식자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며 덤벼든다. 곤충과 어류 중엔 알을 품고 다니다 포란에 지쳐 죽고, 죽고 나서는 새끼들의 먹이가 되는 수컷과 암컷들이 흔하다.
과학자들은 모정과 부정이 동물의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oxytocin)과 바소프레신(vasopressin)에 의해 발현된다고 주장한다. 암컷에게 훨씬 많은 옥시토신은 사랑과 배려의 호르몬이다. 암컷의 짝짓기와 출산, 수유, 육아 본능을 자극한다. 수컷에게 더 분비되는 바소프레신은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을 관장하는데, 새끼와 암컷을 보호하려는 본능에 관여한단다. 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진화의 결과일 테다. 동물이 이럴진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야 더 말할 나위 없다. 호르몬에 의한 동물적 본능뿐만 아니라 문화와 윤리의 세뇌로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을 목숨 걸고 지킨다. 그러니 자녀를 학대하고 심지어 살해하는 부모는 본능으로는 동물만도 못하고, 윤리규범으로는 인간이 아닌 취급을 받는다. 최근 자녀를 학대하고 심지어 살해하는 부모들이 뉴스를 통해 속출한다. 보통 사람들은 본능과 윤리가 무너진 병든 사회를 개탄한다.
크리스마스 새벽 한 아버지가 7개월 된 딸을 온몸으로 감싸안아 살리고 사망했다. 거주하던 서울 도봉구 아파트 3층에서 발생한 화마가 가족이 잠자던 4층을 순식간에 덮쳤다. 30대 부부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경비원이 낙하지점에 설치한 재활용품 수거 포대에 2살 딸을 떨어뜨리고 아내가 뛰어내렸다. 포대 위에 착지할 여유가 없자 아버지는 아이를 이불에 감싼뒤 맨 바닥으로 뛰어내렸단다. 머리를 크게 다쳐 현장에서 숨졌다니, 자신의 몸으로 아이를 받친 것이 확실하다.
자식을 살리려 목숨을 걸었던 아버지를 끝내 거두어간 하늘이 원망스럽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모두 이 아버지와 같을 것이고, 우리 사회는 패륜을 극복하고 지속될 테다. 크리스마스 부정이 세상을 밝혔다. 그런 아버지가 남기고 간 두 아이와 아내가 있다. 가장을 잃은 가족이 걱정이다. 아이 없는 나라에 소중한 생명을 남겨 준 부정이 헛되지 않도록, 공공 지원이 완벽하게 작동해야겠다.
/윤인수 주필